[더우먼동아 컬처] 이지현의 아주 쉬운 예술이야기 “파격을 몰고 다닌 스트라빈스키… 내가 ‘복고 음악’의 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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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5일 11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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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거리에 나가 보면 도트무늬, 레깅스, 파워 숄더, 청청패션, 하이탑운동화…. 그야말로 80년대 스타일 물결입니다. 이토록 요란한 컬러와 과장된 스타일이 다시 돌아올 줄이야…. 물론 요즘 유행이 80년대 스타일 그대로가 아니라 변형을 거친 것이지만, 이를 보며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스트라빈스키의 불협화음에 화들짝 놀란 관중…

예술의 흐름에도 ‘예술이 다시 돌아온’ 사조가 있습니다. ‘신고전주의’, 말 그대로 고전주의의 새로운 버전입니다. 그렇다면, 신고전주의는 고전주의 바로 다음에 등장할까요? 아닙니다. 그 사이에 낭만주의가 있죠.
모차르트 피아노소나타와 슈베르트 가곡을 비교해보면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차이가 느껴질 겁니다. 격식 있게 차려입은 옷차림과 보헤미안 스타일을 보는 듯하다고 할까요? 아무튼, 낭만주의의 과도한 감정이 식상해지자 형식미를 중요하게 여기는 신고전주의가 등장하게 된 겁니다.
신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는 스트라빈스키입니다. 고전적 형식에 새로운 화성을 사용했는데, 원시적 리듬과 불협화음에 화들짝 놀란 관중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불새’나 ‘봄의 제전’ 들어보세요. 지금 들어도 독특한데 1900년대에는 어땠을까요?

▲ 피카소가 그린 스트라빈스키 스케치(풀치넬라가 초연된 1920년, 파리)
▲ 피카소가 그린 스트라빈스키 스케치(풀치넬라가 초연된 1920년, 파리)

자, 그럼 스트라빈스키 작품 중 신고전주의 특성이 잘 드러난 작품 ‘풀치넬라’ 얘기를 좀 해볼까요?
어느 날 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의 발레 프로듀서인 디아길레프로부터 이런 제안을 받습니다. “18세기 작곡가 페르골레지 음악에 오케스트레이션을 붙여 발레음악으로 만들어달라.”
스트라빈스키는 이 얘기를 듣자마자 ‘정신 나갔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트라빈스키처럼 시대를 앞선 작곡가에게 옛날 음악을 편곡하라니….
하지만 페르골레지 자필 악보를 건네받고 나서는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18세기 음악의 20세기 버전이라…. 고전적 형식미 안에 펼쳐지는 불협화음과 변형된 리듬이 신선합니다.
그런데 이 발레작품이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킨 데는 스트라빈스키 음악에 피카소가 무대를 담당했다는 특별한 배경도 한몫 했습니다. 마치 요즘 유행하는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을 보는 것 같죠? 음악 스트라빈스키, 미술 피카소, 이 라인업만 봐도 솔깃했겠네요.
하지만 관중들은 스트라빈스키 음악에 대해 “페르골레지 작품을 왜곡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에 대해 스트라빈스키는 “진정한 전통이란 과거의 유품이 아니라 현재에 활력을 불어넣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맞받아쳤지요. 마을 처녀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청년 풀치넬라의 이야기를 다룬 발레 ‘풀치넬라’. 파격을 몰고 다녔던 스트라빈스키가 만들어낸 고전적 색채는 묘하게 매력적이지요.
과도한 감정에 식상하자 다시 이성으로 회귀! 신고전주의 물결

서양음악사에서 낭만주의에 대한 반발로 신고전주의가 등장했듯이, 서양미술사에서는 엘레강스하고 장식적인 로코코미술이 식상해지자 신고전주의가 등장했습니다.
프라고나르의 ‘그네’를 보세요. 로코코미술의 특징을 잘 말해주죠? 그네 타는 여인을 밑에서 바라보는 남자를 그린 주제도 그렇고, 빛이나 드레스를 봐도 화려하고 장식성이 강한 느낌이 듭니다.

▲ 프라고나르 “그네” (1767, 캔버스에 유채, 81☓64cm, 월래스컬렉션, 런던)
▲ 프라고나르 “그네” (1767, 캔버스에 유채, 81☓64cm, 월래스컬렉션, 런던)

이런 그림이 한창 유행하다가 등장한 그림 중 하나가 다비드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입니다. 다비드의 그림은 균형과 조화, 이상적 형식미를 추구하는 17세기 바로크 미술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즉, 바로크 양식이 약 200년 후에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 겁니다.

▲ 다비드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1784, 캔버스에 유채, 330☓425cm, 루브르미술관)
▲ 다비드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1784, 캔버스에 유채, 330☓425cm, 루브르미술관)

로코코와 신고전주의. 서로 다른 화풍이 느껴지나요?
신고전주의는 로코코예술과는 반대로 감성이 아닌 이성을 중요하게 생각했죠. 그래서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속 등장인물은 마치 로마시대 조각처럼 정지된 상태로 있습니다. “뭘 하고 있는 거지?” 들여다볼수록 호기심이 발동합니다. 비례도 훌륭하고 구성도 극적이고, 임팩트도 강한 그림. 지금 보니 멋진 화보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그렇다면, 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요? 고대 로마와 이웃한 알바 왕국의 군대가 싸움을 하게 됐는데, 양 편에서 세 명의 대표를 뽑아 승부를 결정하기로 했대요. 로마의 대표로 뽑힌 호라티우스 삼형제가 큰 칼을 들고 아버지 앞에서 승리를 맹세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바로크 양식이라는 옛 틀에 남성적이고 영웅적인 스토리를 담아 신고전주의 양식을 보여준 다비드의 그림. 헌 부대에 새 술을 부은 오묘한 느낌이 이럴까요? 고대 그리스 시인 소포클레스는 “변화가 발전은 아니다. 오히려 옛것이 더 생명력을 발휘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옛날에 있었던 뭔가는 현재 아이콘과 맞물려 색다른 요소를 만들어냅니다. 과거에서 영향을 받지 않는 새로운 스타일이 과연 있을까요? 우리가 몇 백년 전의 미술과 음악을 보고 듣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과거의 것들이 촌스럽다고요?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우리의 과거 속 어딘가 미래의 싹이 될 신선한 씨앗이 숨어있을지 모르니까요.
글·이지현(‘예술에 주술을 걸다’ 저자)

글쓴이 이지현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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