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음지교를 꿈꾸며]안무가 안애순 씨-패션 디자이너 임선옥 씨의 ‘9년 우정’

동아일보 입력 2011-11-17 03:00수정 2011-11-17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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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무용에 뭘 입힐까… 팽팽한 ‘줄다리기 소통’
현대무용 안무가 안애순 씨(오른쪽)와 의상디자이너 임선옥 씨.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서로 칭찬하던 분위기가 끊기고 갑자기 긴장감이 감돌았다. 목소리가 높아졌다.

“서로 추구하는 예술적인 스타일이 잘 맞으니까 같이 작업하지요. 그런데 임 선생님이 가끔 무용수를 굉장히 ‘어글리’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어요. 2005년에 김지운 영화감독이 연출을 맡고 배우 예지원 씨도 출연했던 ‘Seven+1’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여기서 한 여자 무용수에게 뮤지컬 ‘캣츠’ 분위기의 호피무늬 타이츠를 입힌 거예요. 과감하다 못해 민망하다는 반응도 많았죠.”(안애순)

“호피의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와 충돌하는 효과를 노린 거죠. 현대무용은 사실 잘 모르겠어요. 제각각의 동작이 도대체 뭘 의미할까 싶은 게 많아요. 그래서 전 무용수 개개인의 디테일보다 작품 전체의 맥락을 중요시하거든요. 그 전체 그림을 위해서 한두 명의 무용수가 희생하는 경우도 생기는 거죠.”(임선옥)

국내 대표적인 현대무용 안무가 안애순 한국공연예술센터 예술감독(51)과 국내 패션계의 대표 디자이너 임선옥 씨(49)를 11일 서울 부암동 임 씨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자기 분야에서 각각 일가를 이룬 두 사람이 함께 무대작업을 해 온 게 2002년 ‘아이고’를 시작으로 벌써 9년이나 됐는데도 매번 작업을 할 때마다 의견차로 팽팽한 줄다리기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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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평론가 장인주 씨는 두 사람의 이 ‘팽팽함’이 국내 무용계에선 소중하다고 했다. 두 사람 이전엔 국내 현대무용에서 의상디자이너는 안무가의 요청에 맞게 옷을 만들어주는 보조적 역할이었지 대등한 관계에서 안무가와 소통하지 않았다는 것. 두 사람의 만남은 그런 의상의 중요성을 격상시키는 계기가 됐다.

패션디자이너 정구호 씨가 두 사람을 이어줬다. 한국적 색깔을 유지하면서 현대적 느낌의 안무를 추구해 온 안 감독의 춤에 임 씨의 의상이 딱 맞겠다며.

현대무용 ‘불쌍’은 일상복의 느낌을 살리면서도 파격적인 의상으로 화제를 모았다. 안애순무용단 제공
“한국적인 것을 현대화하려는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게 의상에서 느껴졌어요. 과감하게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모습도 보였죠.”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서 의상을 맡아 대종상을 받기도 했던 임 씨는 “새로운 도전이 즐거워 덜컥 맡았는데 예상과 많이 달랐다”고 말했다. “패션쇼에선 모델들은 그냥 입히면 작품이 되는데 무용수들은 탄탄한 근육에 키는 보통 사람보다도 작아 디자인이 잘 안 살더라고요. 심란했죠.”

하지만 역시 프로는 프로였다. 첫 작품 ‘아이고’부터 2009, 2010년 ‘불쌍’까지 하는 작품마다 의상도 함께 주목받았다. ‘아이고’는 작품의 한 대목이 영화 ‘바람난 가족’에 그대로 삽입됐다. 2003년 두 번째 작품 ‘원-after the other’는 안 씨가 이끄는 안애순 무용단의 대표 레퍼토리 작품으로 요즘도 꾸준히 무대에 오르는데 전통과 현대적인 느낌을 버무린 의상이 절묘했다.

전통을 상징하는 여자 무용수는 붉은 재킷에 치마를 입었는데 재킷 소매를 속이 비치는 하늘하늘한 소재의 흰 천으로 마감해 현대적이면서도 한복의 느낌을 풍겼다. 일상적인 티셔츠 바지 트레이닝복 느낌의 옷들도 등장하는데 흰색 러닝셔츠의 가슴 부위에 붉은 꽃무늬를 그려 넣는 식으로 변화를 줬다. 안 씨는 “요즘도 외국 공연 때 의상에 대한 칭찬을 많이 듣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의견이 충돌할 때마다 이기는 쪽인 임 씨도 불만이 있다. “좋은 무용 의상을 만들려면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해야 하는데 국내 무용계가 사실 충분히 디자인을 고민할 시간을 줄 만큼 예산이 많지 않아요.”

이에 대해 안 씨는 “현대무용은 대중적이지 않기 때문에 세계 어디를 가도 저예산이다. 열악한 여건에서 임 선생께 항상 뭘 자꾸 해달라고 해 미안하지만 재능 기부라 생각해 달라”며 웃었다.

두 사람의 차기작은 다음 달 22, 23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마이크’다. 일상에서 현대인이 막연하게 느끼는 불안심리를 다뤘다. 마이크는 ‘소통의 도구’를 상징하는 오브제로 사용된다. 이번 작품의 의상디자인 역시 아직도 구상 단계라고 한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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