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간 꿈꾼 환상이 펼쳐진다

  • Array
  • 입력 2011년 11월 15일 03시 00분


코멘트

한국 추상 미술 거목, 남관 탄생 100돌
‘환기 미술관’서 사후 최대규모 전시회

서울 종로구 환기미술관은 ‘수화 김환기가 만난 사람들’의 두 번째 전시로 남관 화백의 예술세계를 돌아보는 특별기념전을 마련했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서울 종로구 환기미술관은 ‘수화 김환기가 만난 사람들’의 두 번째 전시로 남관 화백의 예술세계를 돌아보는 특별기념전을 마련했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화가는 1955년 마흔네 살 나이에 프랑스 파리행을 감행했다. 그의 조국은 식민지 시대를 겨우 벗어난 뒤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참혹하게 찢긴 상태였기에 당시로선 무척 힘든 선택이었다. 몽파르나스 아파트에서 굶주리는 연습을 밥 먹듯 했던 화가는 말할 수 없는 곤궁함, 고독, 절망 속에서도 “그림 그릴 때가 제일 행복하다”며 밤낮없이 그림에 몰두했다. 전쟁을 모티브 삼은 그림은 유적이나 폐허를 연상시키는 어두운 색조에, 모든 대상을 해체시키는 앵포르멜 미학으로 녹아들었다. 재료는 물론이고 끼니도 챙기기 어려운 고비를 넘긴 끝에 그는 1966년 권위 있는 프랑스의 망통회화비엔날레에서 빛나는 결실을 거둔다. 대상을 받은 스페인 작가 안토니오 타피에스에 이어 1등상을 차지한 것이다.

한국 근현대 추상미술의 거목으로 꼽히는 남관(1911∼1990·사진)의 궤적이다.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세계를 향해 도전했던 그의 삶과 50년 화업을 돌아보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환기미술관이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화가를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한 ‘念·像·幻想’전. 채영 학예사는 “남관은 한국적 정신을 서양의 과학적이고 견고한 재료를 빌려 표현한 대표적 추상화가로 이번이 사후 최대 규모의 전시”라고 소개했다. 젊은 시절 발표한 향토적 소재의 구상 회화, 파리 시절의 앵포르멜 작품, 신비한 청색조 그림 등 중기와 말년작까지 두루 만날 기회다.

경북 청송에서 태어난 남관은 도쿄의 태평양미술학교에서 공부한 뒤 광복을 계기로 귀국한다. 6·25의 참상을 체험한 그는 전쟁의 살상과 파괴를 독창적 추상회화로 표현했다. 시체와 부상당한 사람들의 얼굴을 고성의 돌담 조각이나 땅속에 파묻혔다 세상에 나온 유물 같은 이미지로 드러낸 것이다. 파리 생활을 끝내고 1968년 귀국한 뒤엔 마치 옥빛칠보공예 같은 청색조 화면에 상형문자나 마스크, 기호 같은 대상을 콜라주 기법으로 표현한 작업을 펼친다. 상징과 환상이 어우러진 그의 작품은 추상 같은 구상, 구상적인 추상의 양면성이 매력이다.

도불(渡佛) 1세대 작가로 세계와 소통하는 보편적 조형언어를 찾고자 노력한 작가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한국인이니까 동양적인 것, 한국적인 것을 해야 한다는, 그런 것은 반대한다. 내가 한국인이니까 의식적으로 동양적인 것을 안 해도 저절로 동양적인 게 나올 텐데, 일부러 그렇게 할 필요가 있겠는가. 동양적인 것보다 세계적인 것, 세계로 통할 수 있는 것, 그걸 항상 생각하게 된다.”

불굴의 의지로 창작에 일생을 바친 그의 작품에서 회화의 힘과 웅숭깊은 울림이 전해온다. 전시는 내년 1월 15일까지. 02-391-7701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