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골 마에스트로? 속은 여린 無慾女!

  • Array
  • 입력 2011년 11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로 무대 서는 박칼린

똑 부러지는 여장부일 줄 알았다. 만나보니 허술한 구석이 많았다. 흘려 넘겨도 될 평범한 질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농담 섞인 질문엔 갑자기 눈물을 터뜨렸다. 개인적 소신은 뚜렷했지만 그 때문에 주변 사람이 상처받을까 노심초사했다. 숫자에 약한 반면 유년의 추억엔 강했다. 겉은 ‘강골 마에스트로’ 같았지만 속은 여린 소녀였다.

지난해 ‘남자의 자격-하모니 합창단’의 지휘자로 국민적 스타가 된 ‘칼린 쌤’ 박칼린 씨를 만났다. 1995년 초연된 ‘명성황후’부터 최근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막을 내린 ‘렌트’까지 뮤지컬 음악감독과 연출가로 주로 활약해온 그는 18일 배우로서 관객을 만난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한국어 공연의 여주인공 다이애나 역이다.

1996년 ‘명성황후’에서 러시아공사 부인 역으로 잠깐 출연했지만 본격 연기자로선 1991년 연극 ‘여자의 선택’ 이후 20년 만이다. 7월 제작발표회에서 “굉장히 떨린다”고 밝힌 그였지만 공연 두 주를 남기고는 자신감이 넘쳤다.

“의외로 너무 편안해 저도 놀라고 있어요.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 대부분이 함께 작업해 온 분들인 데다 배역이 제게 딱 맞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오히려 음악감독이나 연출을 할 때보다 몸도 마음도 편합니다.”

왜 그런 걸까. 뮤지컬 전문가답게 그에 대한 설명도 똑 부러졌다.

“감독은 머리를 엄청 굴려야 하지만 배우는 그런 감독의 지시에 충실히 부응하기만 하면 되잖아요. 특히 라이선스 뮤지컬은 그 배역에 맞는 성별과 연령, 음색에 맞춘 캐릭터 캐스팅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연출진의 지시만 잘 따르면 돼요.”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로 20년 만에 본격 무대연기에 도전하는 박칼린 씨는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보편적으로 공감할 만한 작품이기 때문에 눈물 많은 한국 관객들이 분명히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로 20년 만에 본격 무대연기에 도전하는 박칼린 씨는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보편적으로 공감할 만한 작품이기 때문에 눈물 많은 한국 관객들이 분명히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그래도 20년 만에 무대에 서면서 그것도 미국 토니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역을 맡았는데, 너무 자신만만한 것 아닐까.

“많은 분이 제가 안 하던 짓을 갑자기 한다고 오해를 하시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전 평생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듯 살아왔어요. 뭘 하고 싶다고 욕심을 내기보다는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 불려 다니며 그 역할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첼리스트에서 국악소리꾼, 연극배우, 뮤지컬 음악감독, 합창단 지휘자, 뮤지컬 연출가… 뮤지컬 배우까지 이어지는 그의 이력만 놓고 보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발언이다. 하지만 한국인 아버지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부산에서 자라면서 한국무용과 피아노를 함께 배웠고, 미국으로 건너가 첼로를 전공하면서도 중학생 때부터 합창단 지휘, 재즈밴드에서 색소폰 연주, 장구 연주, 뮤지컬 연기를 병행해왔다. 첼리스트의 길을 접고 한국으로 와 판소리를 배우고 극단에 들어간 것은 그중 하나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없어서였다고 했다.

팔방미인의 무욕론(無慾論)은 쉬이 끝나지 않았다. 그래도 ‘넥스트 투 노멀’ 출연은 “내가 잘할 수 있고 꼭 해보고 싶다”고 제법 욕심을 낸 작품 아니었던가.

“평생 욕심이 났던 뮤지컬 배역은 딱 셋뿐이에요. 젊어선 ‘에비타’의 에비타 역을 꿈꿨고, 중년이 됐으니 ‘넥스트 투 노멀’의 다이애나. 좀 더 나이를 먹은 뒤엔 ‘선셋 대로’의 여배우 노마 역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그 캐릭터들이 매력적인 점도 있지만 제 음역이나 음색, 나이가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제작진의 출연 제의가 없었다면 제 발로 오디션에 응시하진 않았을 거예요.”

아들을 잃고 조울증에 걸린 중년여성의 애환을 그린 ‘넥스트 투 노멀’의 어떤 점이 미혼인 그를 사로잡았을까. “스토리 음악 연기의 삼박자를 고루 갖춰 관객을 자연스럽게 웃기고 울린다”는, 작품에 대한 극찬이 그 대답이었다. 20년 뒤 그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비틀스의 노래 ‘웬 아임 식스티포’ 이야기를 꺼내면서 예순 즈음에 뭘 하고 있을 것 같으냐고 물었다.

“아, 늘 꿈꾸는 게 있어요. 제가 키운 제자들의 공연장 뒤에서 옷도 다리고 머리도 만져주면서 행복한 마음으로 뒤치다꺼리하고 있는 모습. 그 생각만 하면 왜 이리 가슴이 벅차고 눈물이 나는지….”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i: 내년 2월 12일까지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6만∼9만 원. 02-744-4033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