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1273>千里而見王하여 不遇한 故로 去하되 三宿而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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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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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孫丑(공손추)·하’ 제12장을 보면 맹자가 제나라 도성을 나와 晝(주) 땅에 사흘간 머물다가 떠나자 尹士란 사람이 맹자를 비난한 말이 실려 있다. 윤사는, 제나라 왕이 결코 탕왕이나 무왕 같은 성군이 될 수 없거늘 맹자가 그 사실을 몰랐다면 어리석은 것이고, 알았다면 녹봉이나 이익을 얻으려 한 것이라고 했다. 또 윤사는 맹자가 자신의 뜻이 실행되지 않는 것을 보고 제나라를 떠나려 했다면 주 땅에 사흘이나 머문 것이 괴이하다고 했다.

千里는 맹자가 不遠千里而來(불원천리이래·천리를 멀다 여기지 않고 옴)했던 사실을 두고 말한 것이다. 不遇는 맹자의 뜻과 제나라 왕의 뜻이 합치하지 않은 것을 뜻한다. 三宿은 세 번 잔다는 말로, 한곳에 오래 유숙함을 뜻한다. 是何濡滯也는 반어의 표현을 이용한 감탄문으로 ‘이는 어찌 이렇게 머뭇거린단 말인가!’의 뜻이다. 士는 尹士가 자기 이름을 불러 자칭한 것이다. 玆不悅은 이에 대해 기뻐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맹자는 ‘萬章(만장)·하’에서 ‘공자가 노나라를 떠날 때 더디고 더디구나, 나의 이 걸음이여! 하셨는데, 부모의 나라를 떠날 때의 도리가 그러했던 것이다’라고 했다. 공자가 노나라를 떠날 때 걸음이 遲遲(지지·더디고 더딤)했던 것이나 맹자가 제나라를 떠날 때 걸음이 濡滯(유체·머뭇거림)한 것은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뜻이 간절해서 과감하게 버리고 떠나지 못해 그런 것이었다. 조선시대의 尹휴(윤휴)는 ‘感遇(감우)’ 시에서 ‘적자(백성)가 이미 도탄에 빠졌으니 창생을 지금 어찌하란 말인가! 노나라 떠나려니 절로 발걸음 더디었고, 주 땅을 나가면서 괜스레 머뭇거렸지(赤子旣塗炭, 蒼生今奈何. 去魯自遲遲, 出晝空濡滯)’라고 했다. 세상이 더럽다고 세상을 과감하게 잊어버리는 것을 果忘(과망)이라고 한다. 종래의 선비들은 과망을 하지 않았다. 그 정신을 계승했기에 우리에게는 오늘이 있고 또 미래가 있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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