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그렇게 쏟아붓는데… 서구의 후진국원조 왜 실패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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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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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의 절반 구하기/윌리엄 이스털리 지음·황규득 옮김/672쪽·2만5000원·미지북스

저자는 서구의 원조와 군사 개입이 제국주의 시대에 유행하던 ‘백인의 의무’를 재탕한 것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책 표지에 쓰인 사진 속 흑인들이 원제 ‘백인의 부담(The white man's burden)’과 흑백 대조를 이룬다. 미지북스 제공
저자는 서구의 원조와 군사 개입이 제국주의 시대에 유행하던 ‘백인의 의무’를 재탕한 것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책 표지에 쓰인 사진 속 흑인들이 원제 ‘백인의 부담(The white man's burden)’과 흑백 대조를 이룬다. 미지북스 제공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의 대외원조 현장에서 일하는 한국인 의사에게 일선의 현실을 전해들은 일이 있다. 독일의 원조로 지은 병원을 방문했는데, 세탁용 세제로 수술도구를 닦고 피고름 묻은 천을 손으로 빨고 있더라는 것. 원조받은 기계는 고장 나 방치된 지 오래였다. 원조국이 거액을 들여 기계를 보내도 손질하고 고칠 사람이 없으니 고장 나기 전까지만 사용하는 게 전부였다.

서구 선진국이 지난 50년 동안 대외원조에 지출한 금액은 2조3000억 달러(약 2622조 원). 내년 한국 정부 예산의 8배 규모다. 하지만 아직도 12센트짜리 말라리아약이 없어 죽는 어린이가 30초마다 한 명꼴이다. 거시경제 차원에서 보면 원조와 성장은 음(―)의 상관관계를 보인다. 즉 원조가 늘면 오히려 국민소득 증가율이 정체된다.

세계은행 출신의 개발경제학자 윌리엄 이스털리 뉴욕대 경제학과 교수는 서구의 원조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원조 방식의 비효율성을 꼽는다. ‘선한 의지’만 있을 뿐 실제 원조 소비자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그들이 만족하고 있는지 살피지 못하며 결과에 책임을 지는 일도 드물다고 분석한다.

캐나다 국제개발기구와 세계은행이 레소토에서 벌인 사업은 이런 한계를 드러낸다. 두 기관은 레소토에서 농업 개선사업을 벌이면서 식량 수확량이 300% 증가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오히려 손해만 봤다. 선진국에서 온 사업 책임자들은 지역 주민들이 패배주의자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패인은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를 농부가 아니라 남아프리카공화국 광산 이주 노동자로 여긴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데 있었다.

미국 워싱턴의 비영리단체 PSI가 말라위에서 벌인 말라리아 예방용 모기장 보급 사업은 효율적 원조방식에 대한 시사점을 준다. 이들은 농촌지역 임산부 진료소를 통해 임산부들에게 모기장을 50센트에 팔았다. 간호사들은 모기장 판매액의 일부를 가져가기 때문에 열심히 모기장 판매에 나선다. PSI는 도시지역에서 모기장을 5달러에 팔아 재원을 충당한다. 그 결과 5세 이하 아동의 모기장 이용률이 5년 만에 8%에서 55%로 늘었다. 모기장을 무료로 원조받은 곳에서는 모기장 이용률이 30%에 그쳤다. 모기장을 암시장에 내다팔거나 고기잡이 그물 혹은 면사포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구 선진국이 세계를 구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리고 ‘내재적 관점’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원조 대상국 현지에서 스스로 활동하는 ‘탐색가(Searcher)’를 지원함으로써 그들이 자유시장 안에서 자생적 발전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출범 이후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지위가 바뀐 유일한 국가다. 공적개발원조(ODA) 금액도 계속 늘고 있다. 서구 원조 선진국들의 고민이 멀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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