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의 내면 엿보기, 초상화의 비밀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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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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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200여 점 특별전

약 400년 전 네덜란드에 건너간 이 사람은 과연 누구였을까. 화가 루벤스가 조선 사람을 모델로 그린 ‘한복 입은 사람’ (1617∼1618년경).
약 400년 전 네덜란드에 건너간 이 사람은 과연 누구였을까. 화가 루벤스가 조선 사람을 모델로 그린 ‘한복 입은 사람’ (1617∼1618년경).
국내외에 있는 조선시대 초상화 명품이 한데 모였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이 11월 6일까지 개최하는 ‘초상화의 비밀’ 특별전. 태조 영조 철종 고종의 어진(御眞·임금의 초상)을 비롯해 이명기 김홍도 이한철 채용신 등이 그린 초상화, 윤두서의 자화상, 루벤스의 ‘한복 입은 사람’ 등 초상화 200여 점을 선보인다. 국내 초상화 전시 사상 최대 규모다. 정몽주 이성계 황희 박문수 채제공 김정희 최익현 황현 등 역사적 인물들의 얼굴과 내면을 그림으로 만나보는 자리이기도 하다.

○ 충효의 실천에서 일상의 발견으로

조선시대 어진이나 사대부 초상화의 가장 중요한 제작 목적은 이들의 초상화를 모셔놓고 그 위업과 정신을 기리는 것이었다. 초상화를 통해 충효의 유교 덕목을 구현하려 한 것. 터럭 한 올 틀리지 않도록 엄정하게 그린 것도 초상 속 주인공의 정신세계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조선 후기로 가면서 주인공의 일상을 표현하는 초상화가 늘어났다. 한층 자연스러운 포즈에 안경 서책 도자기 벼루 부채 등 선비들의 소품을 화면에 등장시켜 편안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1748년작 ‘석천공한유도(石泉公閑遊圖)’는 야외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무인의 초상화로 눈길을 끈다.

○ 내면의 성찰, 자화상

자화상은 초상화 가운데서도 독특한 장르다. 자신의 얼굴을 그린다는 것은 내면에 대한 성찰 없이는 불가능한 일. 귀도 목도 없이 얼굴이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듯한 윤두서 자화상(18세기 초)은 화면 속 주인공의 맹렬한 눈빛과 독특한 조형미가 돋보이는 명작이다. 최근 사진 자료 발굴과 X선 촬영에 힘입어 당초에는 귀도 있고 옷선도 그려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귀가 너무 작아 왜 그렇게 그렸는지, 옷선은 왜 지워졌는지 또 다른 궁금증을 낳고 있다.

고희동의 유화 자화상(1915년)에서는 한국 최초 서양화가로서의 자의식을, 이쾌대의 자화상(1948∼49년)에선 1940년대 좌우 이데올로기와 예술의 현실참여 속에서 고뇌했던 예술가의 내면을 만날 수 있다.

○ 외국인이 그린 한국인 초상

대체 귀와 목은 어디로 간 것일까. 강렬한 눈빛과 독특한 구도에 힘입어 조선시대 초상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윤두서의 자화상(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대체 귀와 목은 어디로 간 것일까. 강렬한 눈빛과 독특한 구도에 힘입어 조선시대 초상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윤두서의 자화상(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외국인이 그린 자화상도 출품됐다. 17세기 중국인이 그린 남이웅과 김육의 초상화, 18세기 일본인이 그린 조태억의 초상화 등 이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얼굴이 흥미롭다. 화제작은 역시 루벤스의 ‘한복 입은 사람’(1617∼18년·폴게티박물관 소장). 그림 속의 주인공은 임진왜란 중에 왜병에게 끌려간 조선 평민 또는 포로 병사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번 전시에서 그가 조선의 전직 관리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그림의 화풍, 주인공의 의복, 선박의 표현 등으로 볼 때 일본에 와 있던 네덜란드인에게 발탁된 조선의 전직 관리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 사진이 초상화에 미친 영향

19세기 말 보급된 사진술은 초상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사진용 포즈나 소품이 초상화에 등장했으며 아예 사진을 보고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채용신이 그린 황현 초상(1911년)이 대표적이다. 모본이 됐던 인물 사진도 함께 전시했다. 고종의 사진이 유포되면서 사진을 보고 그린 고종 초상화도 많았다. 현재 거의 똑같은 포즈의 고종 초상화가 많이 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월요일 휴관. 02-2077-9265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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