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들 ‘작품 후기’ 살펴보니

  • Array
  • 입력 2011년 8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참을 수 없는 ‘창작 산통’… 그리고 던진 신음은

소설책을 열면 으레 만나는 ‘작가의 말’. 작가에게 이 짧은 글은 긴 시간 동고동락했던 자식 같은 원고를 떠나보내는 작별 인사이자 새로운 독자에게 건네는 반가운 인사다. 이를 통해 집필 의도를 밝히거나 창작의 고통을 토로하고, 문학적 결기를 다짐하는 일성(一聲)을 쩌렁쩌렁 울리기도 한다.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는 오래전 자신이 쓴 책 100여 권의 머리말만을 모아 ‘김윤식 서문집’을 내며 ‘작가의 말’로 자신의 문학 일생을 반추하기도 했다. 출판사 편집자들의 추천을 받아 소설가의 농밀한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작가의 말’들을 소개한다.

최근 출간된 소설 가운데 가장 강렬한 작가의 말을 담은 작품은 최인호 씨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다. 암 치료 중 작품을 완성한 작가는 “창작욕에 허기가 진 느낌이었고 몸은 고통스러웠으나 열정은 전에 없이 불타올라 두 달 동안 하루하루가 ‘고통의 축제’였다”고 밝혔다. 그는 1987년 가톨릭으로 귀의한 이후가 자신의 ‘제2기 문학’이었다면 암 투병 이후 처음 선보인 이 작품으로 “‘제3기 문학’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최수철 씨는 웬만한 소설책 두 권 분량인 600쪽이 넘는 장편 ‘침대’를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은 작가의 말을 남겼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창밖에서는 계절이 열 번 넘게 바뀌었지만 침대를 소재로 정한 뒤 쓸 얘기가 무궁무진하게 쏟아져 나와 행복에 겨운 고민을 해야 했다.”

성과 연애를 농염한 색채로 그린 ‘유혹’에서 권지예 씨가 쓴 작가의 말은 도발적이다. 그는 “유행하는 말을 쓰자면 ‘나는 작가다’. 한 가지 더 붙인다면 ‘나는 영원한 처녀 작가’이고 싶다”면서 글쓰기 실험을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조정래 씨는 핍진한 민초들의 삶을 그린 ‘비탈진 음지’를 쓴 뒤 “굶주리는 사람이 단 하나만 있어도 그건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라는 시인 릴케의 말을 인용해 사회 공동체 의식을 강조했다.

독자에 따라 달리 해석되기 쉬운 문학의 특성을 고려해 작품의 핵심 주제를 짚으며 독자의 이해를 돕기도 한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의 박범신 씨는 “번지르르한 자본주의 문명 뒤에 은밀히 장전돼 있는 폭력성의 비정한 탄환을 가차 없이 발사했다고 느낀다”고 집필 의도를 적었다. ‘7년의 밤’의 정유정 씨는 “사실과 진실 사이에는 ‘그러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는 말로 반전에 반전을 이어가며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는 작품의 특성을 압축했다.

갓 문단에 데뷔한 젊은 작가들의 경우 대부분 ‘겸손한’ 작가의 말을 내놓는다. 선배 소설가나 출판사, 그리고 가족들에 대한 감사 인사가 빠지지 않는다. 전석순 씨는 ‘2011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첫 장편 ‘철수 사용 설명서’에서 “사실 나는 불량이거나 반품으로 들어온 것일 수도 있음을. 혹은 이미 고장이거나 쓸모없는 것일 수도 있음을”이라며 한껏 몸을 낮췄다.

이 같은 ‘작가의 말’에는 작가의 집필 의도나 창작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결정적인 마케팅 자료가 된다. 많은 작가가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면서도 ‘작가의 말’을 쓰는 까닭이기도 하다. 반면 ‘퀴르발 남작의 성’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의 최제훈 씨처럼 고집스럽게 작가의 말을 쓰지 않는 작가도 있다. 하일지 씨는 ‘경마장 가는 길’의 ‘작가의 말’에서 출판사의 요청에 부득이하게 인사말을 쓰는 곤혹스러움을 밝히기도 했다.

“나는 이런 글을 쓸 계획이 전혀 없었고 또 쓰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의 소설 작품에 이런 글을 덧붙이는 것은 마치 교향악이 끝난 뒤 지휘자가 지금까지 연주한 작품에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 해설을 하는 것만큼이나 우스꽝스러운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