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나성엽의 車車車]고속도로에서 고장난 차… 삼각대 설치규정 좀 더 현실적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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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인천 서해대교 버스 참사는 고장으로 멈춰선 승용차 운전자의 부주의로 일어났다는 비난이 거셌습니다. 당시 사고 버스는 도로에 멈춰서 있던 승용차를 피하려다가 다리 아래로 추락했습니다.

고장 차량 운전자는 평소 자동차 점검을 자주 하지 않은 데다 고장으로 차가 멈춘 뒤 안전삼각대도 설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습니다. 안전삼각대는 차량의 뒤쪽 100m 이상 지점에 설치해야 합니다.

자동차 점검을 게을리한 점은 물론 운전자의 잘못입니다. 하지만 안전삼각대 설치 부분에 대해서는 일부 전문가 사이에서도 아직 논란이 있습니다.

시속 100km 이상으로 차량이 질주하는 고속도로의 2차로. 운전자가 여기에 멈춰선 차에서 내려 트렁크에서 안전삼각대를 꺼낸 뒤 역방향으로 100m 이상 걸어가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차해 있는 커다란 차도 자칫하면 추돌을 당하는 상황에서 사람이 삼각대를 들고 반대 방향으로 걸으려면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1명만 목숨을 걸었으면 20명의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논리를 편다면 할 말이 없어집니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의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 특강 주제로 어울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그런 식의 논리는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고장 난 차량의 운전자도 보호하고 버스 등 다른 차량 탑승자들의 안전도 지키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운전자들의 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차량을 운전할 때, 특히 고속도로를 주행할 때는 ‘차는 달리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바꿔 ‘차는 언제든지 세울 수 있는 것’이라는 마인드를 가져야 합니다. 특히 고속도로에서 장시간 주행하는 데 익숙해지면 눈앞에 보이는 사물이 움직이지 않아도 그것이 달리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런 착각의 함정을 피하려면, 안전거리를 충분히 유지하고 정속주행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고장차나 앞차의 급정거 등 긴급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 설계도 바뀌어야 합니다. 안전삼각대를 길바닥에 세울 게 아니라 고장 난 차량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안전삼각대 역할을 해야 합니다. 트렁크나 해치를 열었을 때 자동으로 안전삼각대가 노출되게 하고 전력 소모량이 적은 발광다이오드(LED)등으로 빨간색 불을 밝혀 뒤따르는 운전자들에게 경고 메시지를 전하는 건 어떨까요.

물론 이런 장치가 적용되면 차 값이 좀 오를 겁니다. 하지만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지킬 수 있다면 소비자들은 ‘좀 비싼 안전삼각대’를 사는 셈치고 충분히 돈을 지불할 것입니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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