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차 한 잔]‘평창 두메산골 50년’ 펴낸 한상복 교수

  • Array
  • 입력 2011년 7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하루 3끼 감자로 해결하던 사람들이… 한국의 반세기 성장사 압축해 보여줘”

1960년 8월 저자인 한상복 교수(왼쪽)가 현지조사 때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용산2리 이장 집 앞에서 마을 유지들과 찍은 기념사진. 눈빛 제공(오른쪽)
1960년 8월 저자인 한상복 교수(왼쪽)가 현지조사 때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용산2리 이장 집 앞에서 마을 유지들과 찍은 기념사진. 눈빛 제공(오른쪽)
“평창이 2018년 겨울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되던 순간을 그 누구보다 감명 깊게 지켜봤지요. 50년 전 두메산골이던 평창군 대관령면 용산2리의 알펜시아리조트로 이제는 세계 사람들이 몰려올 테니까요.”

‘평창 두메산골 50년’(눈빛)을 펴낸 한상복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76·사진)는 8일 인터뷰에서 평창이 겨울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던 순간의 감회로 말문을 열었다.

책에서 그는 한국의 대표적인 산골마을인 강원 평창군 진부면 봉산리와 대관령면 용산2리 사람들의 50여 년에 걸친 생활양식과 그 변화를 실증적으로 연구해 글과 사진으로 기록했다. 민속학 연구이자 생활사 연구의 결과물이다.

1959, 60년 그는 자신의 첫 인류학적 현지조사를 위해 평창의 두메산골을 찾았다. 40여 일간 머물면서 당시 현지 사람들과 똑같이 하루 세끼를 감자로만 해결했다. 동네 이장을 비롯해 마을 사람 모두의 일생을 인터뷰한 덕분에 현재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보다 그 마을과 마을 사람들에 대해 더 잘 안다. 그리고 2010년에 다시 방문했다.

두 마을은 어떻게 변했을까.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산골마을이어서 연구 대상으로 선택된 두 마을의 변화는 대한민국의 발달사를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1960년에는 없던 전기가 들어오면서 지금은 세탁기 냉장고 등 문명의 이기가 가득하다. 벌목이나 화전으로 생계를 잇던 주민들은 대규모의 감자 배추 농사와 고부가가치 작물로 소득을 올리고 있다.

모든 일을 품앗이를 통해서 해결할 정도로 협력하던 일상은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사라졌다. 단, 마을 어귀에서 음력 3월에 지내는 서낭제만은 아직도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 교수는 두 마을 사람들의 혼맥, 자식들의 학력, 당시 생활물품 가격, 연간 농사에 들어가는 비용 등 일상사의 모든 것을 세세히 책에 담았다. 50년의 변화를 추적하기 위해 이미 마을을 떠난 사람들을 찾아 강릉으로 부산으로 쫓아다니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군대에 간다고 환송식을 해줬던 청년을 50여 년 만에 다시 만나기도 했다.

평범한 일반인들의 삶과 생활을 이처럼 세세하게 기록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을까. 한 교수는 “사람들은 50년 전의 생활을 자신의 생애에 있었던 일이기 때문에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서울 사람 중에 여의도에 비행장이 있었고, 난지도에 고아들의 자활경제공동체였던 ‘보이스타운’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고 물었다. 불과 30∼40년 전의 일상 풍경을 해당 마을 사람들도 모를 정도로 대한민국은 급격한 변화를 맞았다는 설명이다. 한 교수는 “봉산리 마을 사람 중에는 머리를 땋고 살던 사람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 마을에서 그 말을 믿으려 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두메산골이 천지개벽을 해서 이제 겨울올림픽이 열린다. 한 교수는 “세계인들이 한국의 발전에 관심을 보이는 만큼 화려한 숙소와 시설에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한국의 반세기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평창 산골마을의 변천사를 관광자원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