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민미술관 시각문화 기획전 ‘SEE, SHOW&THE WINDOWS’

  • Array
  • 입력 2011년 6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보여주고픈 욕망이 있는 한 세상의 모든 풍경은 쇼윈도

사진가 이민호 씨가 충남 계룡시에서 촬영한 모형. 일민미술관의 전시는 상품진열대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든 온갖 이미지를 채집했다.
사진가 이민호 씨가 충남 계룡시에서 촬영한 모형. 일민미술관의 전시는 상품진열대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든 온갖 이미지를 채집했다.
《화려한 조명 아래 빛나는 백화점 쇼윈도가 있는가 하면, 재래시장 가게에는 올망졸망한 약재 봉투가 정겨운 이미지를 선보인다.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과 관공서의 텅 빈 로비도 등장한다. 건물을 온통 뒤덮은 간판에 시골길 전봇대에 매달린 찜질방 광고판의 멋쩍은 얼굴이 어우러진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이 마련한 ‘SEE, SHOW & THE WINDOWS’전은 다양한 이미지의 집적을 통해 충돌과 조화의 풍경을 연출한다. 해마다 주제를 정해 시각이미지를 모은 책과 전시를 병행하는 ‘일민시각문화’의 여섯 번째 수확이다.》

올해는 ‘쇼윈도’ 위주의 사진을 골랐으나 그 대상은 세상의 거의 모든 풍경이라 할 만큼 폭넓다. 양유진 큐레이터는 “쇼윈도란 보여주기 위한 분명한 목적을 갖고 만들어진 것”이라며 “백화점 진열장이든 동물원이든 제한된 화면으로 뭔가 말하고 보여주고자 하는 점에서 닮아 있다”고 설명했다. 좁은 의미의 상품진열대만 아니라 ‘보여주고자 하는 욕망’을 두루 담아냄으로써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그 틈새에 대한 흥미로운 논점을 제기했다.

김태령 관장은 “이번은 일민시각문화의 전환점이 되는 전시”라며 “예전에는 과거에 기반을 둔 이미지를 모았다면 올해는 현재와 연계한 미래지향적 작업으로 구성했다”고 밝혔다. 전시에는 사진가 9명이 각자 시선으로 포착한 쇼윈도 이미지를 펼쳐냈다. 참여 작가는 고현주 신정룡 안성석 이동엽 이민호 이익재 이진우 임지원 전성영 씨. 전시는 8월 14일까지. 무료. 02-2020-2060

○ 명품 매장에서 탑골공원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이 6번째 시각문화작업으로 마련한 ‘SEE, SHOW & THE WINDOWS’전에 나온 안성석 씨의 서울 명동 사진. 이번 전시는 세상의 모든 사물을 ‘쇼윈도’란 시각으로 번역한 사진을 선보인다. 일민미술관 제공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이 6번째 시각문화작업으로 마련한 ‘SEE, SHOW & THE WINDOWS’전에 나온 안성석 씨의 서울 명동 사진. 이번 전시는 세상의 모든 사물을 ‘쇼윈도’란 시각으로 번역한 사진을 선보인다. 일민미술관 제공
전시장에 걸린 서울 강남의 명품 매장과 대형마트의 식품 매장 사진은 보는 이의 욕망을 자극하며 노골적 추파를 던진다. 소시장, 씨앗을 파는 시골장터 좌판에선 인간적 온기가 느껴진다. 공공기관과 주유소 가격 표지판 등 일반적 쇼윈도의 범주에서 비껴난 사진도 눈길을 끈다. 건물도 간판도 스스로 존재와 권위를 표현하려는 욕망은 동일하다는 시각을 담은 기록이다.

이진우 씨는 감각적 소비, 문화적 소비에 관심을 두고 악기상가, 동물원 등을 찾아다녔다. 그는 “우리가 물건을 소비하는 것인가, 물건이 상징하는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인가를 생각했다”며 “쇼윈도는 물건을 팔기 위한 전략적 목적에서 출발하지만 거리를 장식하고 주변의 다른 이미지와 섞여들면서 새로운 공간이 생겨나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유리창에 가려진 탑, 유리 밖에서 그 탑을 바라보는 노인. 이동엽 씨의 탑골공원 사진은 야외에 서있는 탑을 보는 것과, 유리로 가로막힌 탑을 볼 때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일깨운다. 유리 뒤에 무대가 만들어지고 이 무대와 주변과 어우러지면서 낯선 이미지가 탄생한 것이다.

○ 유혹과 설득 사이

세상의 모든 사물을 쇼윈도라는 시점으로 번역한 전시는 우리가 접하는 이미지들이 사회문화적 영향 아래 생겨난 결과물임을 깨닫게 한다. 작가들은 숱한 풍경 중 어떤 기준으로 이미지를 선택했을까. 이동엽 씨는 “내 눈에 보이는 것이 다 쇼윈도처럼 다가왔다. 너무 많은 강압적 이미지 속에 무엇을 선택할까 고민하다 대상을 바라보지 말고 대상이 날 유혹하고 설득해올 때 찍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녹색농촌 레포츠 체험마을 신도안’ ‘상월명품고구마’ 등 도로변에서 흔히 접하는 지역홍보 간판과 모형 사진도 인상적 볼거리다. 이런 이미지를 채집한 이민호 씨는 “욕망, 그 자체는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지 않은가”라며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다 아름답다는 생각으로 긍정과 부정, 판단하지 않고 숨겨진 것, 관조적인 것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말한다.

전시는 현대사회 소비문화에 대해 부정적 판단을 내리기보다 이미지를 소비하는 방식을 중립적으로 제시하면서 관객에게 제안한다. 나를 유혹하는 이미지, 나를 설득하는 이미지는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보라고.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