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Life]Window Farming이 온다, 삶이 파릇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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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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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팜은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도시 농법이다. 인터넷을 통한 전 세계 누리꾼의 협업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도 독특하다.
윈도팜은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도시 농법이다. 인터넷을 통한 전 세계 누리꾼의 협업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도 독특하다.
“뉴욕을 보세요. 온통 콘크리트와 사람들뿐이에요. 저는 식료품을 사러 갈 때마다 그 재료의 원산지가 어디인지 궁금해하곤 했어요. 이젠 일부이긴 하지만, 제가 먹는 것이 어디서 오는지 확실히 안답니다. 바로 제 집 창문가이지요.”(윈도팜 개발자 브리타 라일리 씨)

윈도팜(window farm)은 세계 최초로 도시에서 발생한 농법이다. 그것도 미국 최고의 대도시 뉴욕에서 생겨났다. 윈도팜은 이름 그대로 아파트 등 건물의 창문에서 식물을 기르는 방법이다. 삭막한 도시에 자연의 향기를 불어넣고, 건강한 먹을거리를 원하는 도시인들이 손쉽게 사시사철 채소를 길러 먹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개발자가 자신의 최초 아이디어를 2009년 소셜미디어에 올렸고, 그것을 전 세계 누리꾼들의 도움으로 완성했다는 점에서도 획기적이다. 웹을 이용한 집단적 협업(mass collaboration)에는 과학자와 기술자, 음식 전문가들이 참여해 힘을 보탰다.

라일리 씨는 뉴욕대에서 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웹사이트를 설계한 재원이다. 그녀는 자신이 먹을 채소를 직접 재배하고 싶었다. 하지만 주거환경(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 5층)이 걸림돌이 됐다. 무거운 흙이나 화분을 5층까지 옮기기도 어려웠고, 설사 옮겨놓는다 해도 좁은 공간에서 식물을 기르기가 쉽지 않았다. 옥상에서는 추운 겨울 동안 재배가 불가능했다. 이런 제한 속에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창문의 주변 공간과 빛을 이용해 사철 식물을 기르는 윈도팜이었다.

그가 윈도팜 보급을 위해 세운 ‘사회적 기업’(www.windowfarms.org)은 지난해 미국에서 가장 똑똑한(brilliant) 100대 기업으로 선정(잡지 ‘Entrepreneur’)됐다. 윈도팜은 ‘살림의 여왕’으로 불리는 마사 스튜어트의 TV쇼에서 최근 크게 다루기도 했다.

○ 미국보다 한국에 더 적합


윈도팜은 아직 국내에선 생소한 개념이다. 이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인터넷 동호회가 두 개밖에 없을 정도다. 하지만 윈도팜을 아는 사람들은 미국보다 오히려 한국에 적합한 방식이라고 입을 모은다. 네이버 카페 ‘우리집 식물공장 만들기’(cafe.naver.com/vegshop)의 매니저 장민호 씨는 “거의 전 국민이 아파트에 사는 한국이 미국보다 윈도팜 재배에 더 적합하다”라고 말했다.

윈도팜은 수경 재배 방식을 이용한다. 재배기 만들기는 의외로 간단하다. 여러 개의 용기(페트병 또는 플라스틱 커피잔)를 수직으로 연결하고, 맨 위의 용기에서 떨어지는 물이 그대로 맨 아래까지 흘러내리게 하는 것이 기본 원리다. 윈도팜은 수경 재배 방식 중에서도 가장 저렴하며, 차지하는 공간이 적고, 관리하기가 쉽다.

수경 재배는 흙을 쓰는 화분 재배에 비해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우선 흙이 떨어지지 않아 깔끔하고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 식물을 괴롭히는 진딧물 등 많은 벌레가 흙에서 생긴다. 둘째, 식물의 생장 속도가 토양 재배 때보다 1.5배 정도 빠르다. 셋째, 뿌리의 발달이 최소한에 그쳐 좁은 면적에서 많은 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 흙에 심은 식물의 뿌리는 물과 영양분을 찾아 계속 뻗어나간다. 따라서 최소 몇 년에 한 번은 더 큰 화분에 식물을 옮겨 심어야 한다.

이 밖에도 윈도팜은 많은 이점이 있다. 무엇보다 평소에 ‘낭비’되는 베란다의 햇빛을 안전한 먹을거리로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사철 식물 재배가 가능하고, 공기정화와 습도 조절 기능이 있으며, 아이들의 정서 및 과학 교육에도 도움이 된다. 미국에서는 많은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윈도팜을 이용해 식습관과 식물생리 교육을 한다.

윈도팜을 국내에 소개한 김종범 인천대 교수(신소재공학과)는 “윈도팜은 아이들의 정서 교육은 물론이고 식물을 이용한 심리 치료에도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인테리어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라일리 씨는 윈도팜을 뉴욕 아이빔 아트&테크놀로지센터의 설치미술 작품으로 기획하기도 했다.

○ 어떤 식물을, 어떻게 키울 수 있나

윈도팜에선 시금치, 상추, 케일, 배추, 겨자채, 청경채 등 거의 모든 잎채소를 재배할 수 있다. 토마토와 딸기 등 열매를 맺는 채소도 가능하다. 다만 토마토는 키가 작게 자라는 품종을 선택해야 재배하기 쉽다. 보통의 토마토는 키가 2m까지 자라 윈도팜에 적합하지 않다. 미국에서는 바질이나 캐모마일 같은 허브도 기른다. 국내에선 일부 동호인이 장뇌삼 재배를 실험 중이다. 여름엔 더위에 강한 치커리나 토마토 등을 심는 것이 좋다. 상추나 배추는 더위에 약하며, 온도가 올라가면 꽃이 피어 맛이 없어진다.

윈도팜에서 기른 식물은 비닐하우스에서 기른 것과 노지에서 재배한 것의 중간 정도 맛과 향이 난다. 기자가 맛본 장민호 씨의 겨자채가 그랬다. 너무 억세지도 않고, 너무 부드럽지도 않아 먹기에 딱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윈도팜 재배 용기가 5∼10개만 있으면 4인 가족이 일주일에 한 번 먹을 채소를 연중 수확할 수 있다.

장 씨는 모종보다 종자를 발아시켜 쓰는 방법이 더 낫다고 조언했다. 흙에서 자란 모종에는 벌레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윈도팜 재배용 종자는 살짝 칼집을 낸 스펀지 위에서 발아시키면 된다. 스펀지를 쟁반에 놓고 물을 3일∼1주일 주기로 갈아주면 싹이 튼다. 보통 발아에서 수확까지 빠르면 한 달 반에서 두 달이 걸린다.

물만으로는 식물에 충분한 영양을 공급할 수 없으므로 영양액을 물에 타서 쓰는 것이 좋다. 식물용 영양액은 인터넷에서 ‘수경 재배 양액’으로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인공 양액을 쓰는 윈도팜은 엄밀히 말하면 ‘유기농’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농약을 치지 않아 친환경적이며, 안전하게 채소를 생산하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란 것이 동호인들의 설명이다. 요즘은 천연 양액도 나오고 있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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