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멀리 있어 그립고, 시간이 멈춰 즐겁고, 떠나오면 아련해지는 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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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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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매물도

매물도 등대섬이 3월의 아침햇살 아래서 환희 빛나고 있다. 섬 중턱에 항로표지관리소 관사가 보이고 그 아래로 썰물때만 드러나는 자갈톱이 보인다. 소매물도의 망태봉(해발 152m)에서 촬영.
매물도 등대섬이 3월의 아침햇살 아래서 환희 빛나고 있다. 섬 중턱에 항로표지관리소 관사가 보이고 그 아래로 썰물때만 드러나는 자
갈톱이 보인다. 소매물도의 망태봉(해발 152m)에서 촬영.
오후 2시 통영여객선터미널. 매물도행 엔젤 호의 승선이 시작됐다. 들어선 선실. 의자가 없다. 평상 일색이다. 승객들은 앉자마자 누웠다. 그런 후엔 저마다 개켜둔 이불을 끌어다 덮었다. 그러곤 짐을 베개 삼아 잠을 청했다. 1시간 20분의 매물도 뱃길은 이렇게 꿈결 같다.

○ 엔젤호 여객선으로 즐기는 봄 한려수도 유람

여객선은 한산도, 비진도를 차례로 지났다. 도중에 서너 곳 들르는데 사람도, 짐도 바삐 오르내렸다. 긴 한산도의 끝. 다리로 이어진 추봉도가 보였다. 세종 원년(1419년) 이종무 장군의 쓰시마 정벌 당시 삼도해군 집결지다. 이어 비진도. 안 섬, 바깥 섬을 연결한 모래톱 해변이 멋지게 다가왔다. 매물도는 비진도 오른쪽이다.

○ 대항마을에서 찾는 장군봉과 매물도 탐방로

매물도에선 두 번 섰다. 당금, 대항 마을이다. 소매물도는 그 다음이다. 섬을 보자. 산이 바다에 풍덩 빠진 형국이다. 그러니 맨 비탈이다. 평지라고는 없다. 폐교, 선착장이 유일하다. 집도 산자락에 들어섰다. 고만고만한 집들이 올망졸망 모였다. 분화구 내벽 급경사에 계단처럼 집짓고 사는 산토리니 섬(그리스 에게 해)이 생각났다.

여객선 엔젤호가 매물도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 왼쪽 큰 섬이 매물도고 오른쪽으로 소매물도와 등대섬이 차례로 보인다.
여객선 엔젤호가 매물도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 왼쪽 큰 섬이 매물도고 오른쪽으로 소매물도와 등대섬이 차례로 보인다.
그 산기슭 민박집으로 향한 가파른 오르막. 모노레일이 보였다. 경운기 엔진으로 작동되는 짐 운반수단이다. 이 길은 장군봉(해발 210m)으로 이어졌다. 매물도 최고봉이다. 거리는 900m. 적당한 경사다. 중간쯤에서 전망대 삼아도 좋을 너럭바위가 있다. 마을이 잘 내려다보였다. 산정은 널찍했다. 주변 바다풍광이 파노라마 영상으로 다가왔다. 동북쪽에 거제도, 서쪽에 소매물도와 등대섬이 있다.

하산은 매물도 탐방로(총연장 5.2km)를 따랐다. 길은 서쪽 끝에서 바다를 끼고 마을로 돌아오는 산기슭 중턱으로 났다. 전망이 기막혔다. 마을 조금 못 미쳐 개활지가 펼쳐졌다. 꼬돌개다. ‘꼬꾸라졌다’는 뜻의 섬 방언 ‘꼬돌아졌다’에서 왔단다. 두 해 걸친 흉년과 괴질로 초기 정착민이 모두 숨진 아픈 역사가 담겼다. 여기는 해넘이 명소다. 분홍빛 해가 욕지도 너머로 졌다.

○ 모세의 기적처럼 열리는 바닷길의 등대섬과 소매물도

대양을 향해 흩어져 나간 한려수도의 수많은 섬 중에서도 가장 먼 바다에 자리잡은 매물도의 장군봉에서 바라다본 소매물도와 등대섬. 오른 쪽 산자락의 나무 아래 허리춤으로 새로 낸 탐방로는 이런 풍광을 즐기며 걷는 멋진 길이다.
대양을 향해 흩어져 나간 한려수도의 수많은 섬 중에서도 가장 먼 바다에 자리잡은 매물도의 장군봉에서 바라다본 소매물도와 등대섬. 오른 쪽 산자락의 나무 아래 허리춤으로 새로 낸 탐방로는 이런 풍광을 즐기며 걷는 멋진 길이다.
이튿날 아침. 낚싯배로 소매물도로 향했다. 꼬박 15년 만인데 예상대로다. 등대와 항로표지 관리소만은 변함없었다. 바뀐 것은 등대로 오르는 길. 잘 정비됐다. 한 해 40만 명이 찾는다니 이렇게 해둘 만했다. 마침 등대섬과 소매물도를 잇는 길이 열렸다. 썰물 때만 드러나는 자갈톱(길이 50m)을 두고 하는 말이다. 소매물도로 건너와 해변을 벗어나자 철제 계단이 나타났다. 최정상 망태봉으로 오르는 등산로 들머리다. 등대섬은 망태봉에서 봐야 제격이다. ‘통영팔경’중 하나다. 그러자면 한 시간은 투자해야 한다. 망태봉에서 조망되는 섬과 바다 풍경. 투자할 가치가 있다. 여기서부터 소매물도 선착장까지는 쉬엄쉬엄 산책하듯 내려간다. 도중 폐교를 만났다. 1997년 문 닫은 소매물도 분교다. 바다가 내다뵈는 텅 빈 교정의 녹슨 미끄럼틀과 줄 끊어진 그네, 예스러운 낡은 교사(校舍). 문화공간으로 변신 중이니 기대하시라.

선착장을 향한 내리막길이 마을을 관통했다. 마을은 매물도와 달랐다. 번화가다. 식당도 있고 펜션형 민박도 즐비하다. 길도 북적였다. 좌판 펼친 어민까지 있다. 김, 파래, 방풍나물 등을 파는데 대부분 이 섬 특산물이다. 게서 말린 가시리(해초)를 샀다. 집에서 무쳐먹으니 그 맛이 기막혔다. 통영 바다를 통째로 들이킨 듯 바다 내음이 물씬댔다.

○ 한국의 산토리니, 당금마을

낚싯배로 매물도에 돌아온 건 오전 9시 반. 이번엔 당금마을을 찾았다. ‘어부밥상’은 게서 맛보았다. 이 특별 메뉴는 식당 없는 매물도에서 어민들이 직접 차려낼 ‘특미'다. 올여름부터 내는데 3만 원(2인 기준)이다. 기대했던 밥상. 과연 미역 볼락 천국이라는 매물도다웠다. 볼락과 열기(노란빛 도는 볼락 종류) 구이에 파래, 가시리, 몰, 톳 등 해초가 성게로 맛을 낸 돌미역국과 함께 나왔다. 그런데 반상의 백미는 따로 있었다. 전채(前菜)로 낼 ‘성게 미역쌈’이다. 돌미역에 성게 알을 올려 쌈해서 먹는다. 섬주민이 직접 딴 것만 낸다는 게 이 밥상을 차려낸 노을민박 주인 김정희 씨의 설명. 벚굴(벚꽃 필 때 섬에서 잡히는 석화)샐러드, 문어 톳밥, 참소라물회 소면 등도 준비 중이다.

3월에 매물도의 꼬돌개에서 감상하는 한려해상수도의 해넘이. 중첩된 섬은 가까이부터 가익도 소지도 욕지도다.
3월에 매물도의 꼬돌개에서 감상하는 한려해상수도의 해넘이. 중첩된 섬은 가까이부터 가익도 소지도 욕지도다.
41가구의 당금마을은 23가구 대항마을의 두 배 규모다. 그래서 골목도 있었다. 골목은 게딱지처럼 산기슭에 다닥다닥 붙은 낮은 지붕의 작은 집 사이를 훑는다. 골목(당금길)에선 특별한 것을 본다. 집집 지붕을 장식한 물탱크다. 녹록지 않은 섬 생활의 단면이다. 거기서 최근 이 섬에 부는 변화의 바람을 느꼈다. 예쁜 금속 조형물로 장식된 물탱크의 변신이다. 그뿐이 아니다. 버려진 나무조각을 다듬어 만든 예쁜 명패도 곳곳에 붙어 있다. ‘고기 잡는 할아버지’, ‘제주 해녀를 데려온 할머니’라고 쓴. 섬을 감상할 대상으로 변화시키는 생활 조형물은 예술 섬으로의 변신을 겨냥한 ‘생활거리’ 프로젝트의 하나. 어부밥상도 같은 맥락의 시도다.

○ ‘가고 싶은 섬’ 매물도의 예술섬 프로젝트

‘가고 싶은 섬’ 사업이 시작된 건 2007년. 섬을 새 개념의 문화관광 명소로 가꾸는 것이었다. 시범사업지로 네 개가 선정됐는데 매물도도 거기 들었다. 하드웨어(도로, 탐방로, 선착장 건설 등에 80억 원)는 완료됐다. 지금은 소프트웨어 구축의 막바지로 올 10월이면 끝난다. 주관사인 (사)다움문화예술기획연구회의 추미경 이사는 “매물도를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관계 맺고 향유하는 공간으로 보전, 재생하는 게 초점”이라며 “동시에 예술창작의 주체와 대상이 되도록 이끌 ‘예술섬 프로젝트’를 통해 찾고 싶어 안달하는 소통의 섬이 되도록 만들겠다”고 말했다.



▼케이블TV에 가로등도 있지만 밤이면 적막 흘러 낯선 섬생활▼

‘생활거리’ 가꾸기로 설치된 매물도 당금마을장의 문패.
‘생활거리’ 가꾸기로 설치된 매물도 당금마을
장의 문패.
‘섬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속도에 맞춰 사는 법을 알고 있다. 그 속도는 느긋한 태도와 따뜻한 인정, 단순한 즐거움, 소중한 사람과 소중한 장소에 머무는 여유를 준다. 섬 시간에 맞춰 속도를 늦추는 것은 행복을 위한 기본적인 자세다. 우리 자신에게 귀 기울이고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있어서다. 섬사람의 현명한 선택을 배운다면 누구든 행복해질 수 있다. 매일 천국을 느낄 수 있다.’

재니스 프롤리흘러라는 한 여행가의 독백이다. 그는 세상 곳곳의 섬 스물다섯 개를 여행했다. 그런 뒤 ‘세상의 모든 섬이 내게 가르쳐준 지혜’라는 책을 썼다. 섬에 대한 그의 상념은 이렇다. ‘섬은 느림과 단순함이라는 마법으로 내륙의 광기에 사로잡힌 우리에게 여유를 찾아주는 지혜의 공간이다.’

봄기운 어린 남해 쪽빛 바다에 둘러싸인 매물도. 이틀간 머문 뒤 아쉬움을 접고 통영행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비진도와 한산섬을 아우르는 한려수도 뱃길. 1시간 20분 항해 중 내 머릿속을 맴돈 건 섬의 ‘단순함’과 ‘느림’이었다.

섬에서 첫날 오후 내내 낫 든 채 길잡이 해주신 칠순 이장님. 풀 이름 묻는 질문에 대답은 늘 엉뚱했다. “이건 몸에 좋아, 이건 안 좋아.” 그분에게 세상 풀은 딱 두 종류뿐이었다. 이튿날 아침 당금마을의 민박집. ‘어부밥상’ 차려낸 부산 출신 오십대 여주인도 비슷했다. 매물도에 놀러왔다가 섬사람과 사랑에 빠져 섬사람이 됐다는데 대화를 나누다보니 그녀 역시도 섬과 남편, 이 둘이 세상 전부였다.

매물도에도 케이블TV가 나온다. 가로등도 있다. 화장실도 수세식이고 펜션 같은 민박도 있다. 이것만 보면 도시와 진배없다. 그러나 삶은 아니다. 마치 다른 혹성 같다. 우선 사람 기척이 드물다. 밤엔 아예 없다. 소음도, 불빛도 찾기 힘들다. 길은 좁고 너무 가팔라 자동차는 무용지물. 당금마을에만 몇 대뿐, 다닐 길도 없다. 도시사람에겐 정말로 낯선 풍경이다. 시간 개념도 다르다. 해뜨면 일하고 해지면 잔다. 서두름도 없다. 잠까지 줄여 시(時)테크에 목숨 거는 우리와는 다르다. 오후 8시가 자정인 곳. 거기가 섬이고 여기 매물도다.

이틀간의 매물도 체류. 매사는 ‘불편’으로 일관됐다. 낯설기로도 어느 외국 못잖고. 그랬다면 고개 내저으며 떠나게 마련.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꼭 뭘 두고 가는 듯 왠지 아쉽고 마음이 ‘짠’했다. 단순, 소박, 느긋함이 빚은 ‘여유’에 중독돼서다. 그것도 딱 하룻밤 새. 섬에는 섬만의 시간이 있다. 섬의 여유란 게서 온다. 그 여유 얻자고 도시에 섬 시간을 가져갈 순 없다. 그건 섬에서만 통용되니까. 그러니 떠나자. 매물도로. 거기 가서 찾아보자. 세상 모든 섬이 가르쳐준 지혜를.

통영·매물도=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 여행정보

매물도에서 맛볼 수 있는 어부밥상의 한상차림. 앞줄 가운데부터 시계방향으로 성게알 미역쌈, 가시리, 몰, 볼락 열기구이, 부침, 벚굴.
매물도에서 맛볼 수 있는 어부밥상의 한상차림. 앞줄 가운데부터 시계방향으로 성게알 미역쌈, 가시리, 몰, 볼락 열기구이, 부침, 벚굴.
◇매물도 ▽일반정보 △지리: 본섬(매물도)과 소매물도, 등대섬으로 구성. 통영시 한산면에 속하지만 지도상으로는 거제도에 더 가깝다. 매물도에는 당금, 대항 등 마을이 두 곳. 각각 선착장을 갖춰 여객선이 소매물도까지 차례로 들른다. △등대섬 찾기: 항로표지관리소 관사만 있고 주민은 살지 않는다. 소매물도에서 등대섬을 걸어가려면 썰물 때만 드러나 두 섬을 이어주는 자갈톱(길이 50m)을 이용. 물때는 여객선 홈페이지 등에서 확인. △무선인터넷(스마트폰): 섬 전체에서 원활. △상점: 등대섬 외 두 섬(마을별 구판장)에만 있다. △민박: 두 섬 모두 가능. 주방 갖춘 펜션형부터 코펠, 버너까지 준비해야 하는 객방까지 다양. 문의 ①당금마을: 박성배 이장(010-8929-0706) 김인옥 어촌계장(010-3844-9853) ②대항마을: 이규열 이장(010-4847-9696) 김정동 어촌계장(010-6340-1514) ③소매물도: 이석재 이장(010-2810-7704) 김정만 씨(017-590-2007) △식사: 식당은 소매물도에만 있다. 매물도에서는 민박집에서 제공(6000원). 주민들은 바다 일로 바빠 반찬이 부실할 수 있으니 밑반찬은 따로 준비해오길 권한다. 매물도에서 새로 개발한 ‘어부밥상’(2인 기준 3만 원)은 올여름부터 낸다. ▽찾아가기 △매물도: 통영(여객선터미널)과 거제(저구항)에서 정기여객선 운항(하루 3회 왕복) 중. 거리(뱃길)는 통영항에서 28km, 저구항에서 15km ①통영항: 비진도를 경유하는 섬사랑호, 엔젤호로 1시간 20분 소요. 출발(통영) 오전 7, 11시, 오후 2시 10분. 2만7300원(왕복·어른 기준). 한솔해운(www.nmmd.co.kr) 055-645-3717 ②저구항: 매물도 직행 구경호로 40분 소요. 출발(거제)은 오전 8시 30분과 11시, 오후 1시 30분과 3시 30분. 1만 원(편도). 매물도해운(www.maemuldotour.com) 1688-1317, 055-633-0051. 매물도해운여객선터미널(저구항)은 거제섬 남서쪽의 남부면. 통영버스터미널에서 ‘해금강·저구’ 방면(신흥여객) 탑승 후 ‘저구25시’에서 하차.

◇통영 ▽찾아가기 △손수운전: 대전통영고속도로(무주 산청 진주 경유) 이용. ‘거가대교’를 경유하려면 경부고속도로 이용해 거제를 거쳐 간다. △고속버스: 서울남부터미널(02-521-8550)에서 4시간 소요. ▽맛집 △충무김밥: 통영은 ‘충무김밥’의 고향. ‘충무시’와 ‘통영군’이 현 통영시로 통합되기 전 통영시의 옛 행정지명(충무시)을 그대로 담은 향토음식이다. 김밥집은 통영여객선터미널 건너편 서호동 길가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중 ‘원조 풍화김밥’(주인 김영식·서호동 177-354)은 1·2호점을 둔 토박이식당. 김밥(8개 1인분 4000원)을 참기름, 계란말이와 함께 낸다. △대양수산해물(주인 신종철): 굴과 멍게, 전복을 대량 수집, 전국에 택배로 판매하는 식당 겸 유통점(도남동 634). 미륵산 케이블카역에서 가까운 통영유람선터미널 1층(선착장 앞 바닷가)에 있다. 통영 굴은 4월까지 나는데 현 시세는 kg당 8000∼9000원. 올 대풍인 멍게도 4월까지 제철로 1kg(껍질을 까지 않은 것)에 5000원. 이 식당에서는 싱싱한 굴과 멍게, 전복을 싼값에 먹을 수 있다. 055-644-4980, 010-4205-2508. 상가 1층에는 통영누비, 건어물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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