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연극으로 만나는 노통브의 소설 ‘오후 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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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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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히는 이웃 때문에 미치지 않으려면…

매일 같은 시간에 방문하는 이웃집 손님
역의 이정수 씨(왼쪽)와 집주인 에밀 역의
전중용 씨. 극단 여행자 제공
매일 같은 시간에 방문하는 이웃집 손님 역의 이정수 씨(왼쪽)와 집주인 에밀 역의 전중용 씨. 극단 여행자 제공
오후 4시만 되면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 그는 커피 한 잔 마시면서 두 시간을 버티다 오후 6시가 돼야 자리를 뜬다. 그 두 시간 동안 그가 하는 말은 ‘예’ 아니면 ‘아니요’가 대부분이다. 그것도 질문 하나에 30초가량은 뜸을 들였다 답한다.

은퇴하고 오랫동안 꿈꾸던 전원주택 생활에 들어간 주인 부부는 이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 인해 노이로제에 걸린다. 유일한 이웃의 방문을 예의상 거절할 명분도 없지만 거대한 덩치에 무서운 인상을 지닌 손님의 카리스마에 잔뜩 주눅이 들어서다.

벨기에 출신의 인기 작가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을 연극화한 극단 여행자의 ‘오후 4시’는 그렇게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상시킨다. ‘고도…’가 끝없이 반복되는 기다림으로 관객을 압박한다면 ‘오후 4시’는 무한 반복되는 규칙적 방문으로 관객을 압박한다. 이 연극 속 손님은 일본 연극 ‘억울한 여자’의 여주인공 유코에게 필적할 만큼 관객의 답답증을 유발한다. 그의 무의미한 방문을 견딜 수 없게 된 주인 부부(전중용, 김은희)가 벨소리에 응답하지 않자 미친 듯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자신의 방문을 관철시키는 손님의 집요함을 견디다 못한 관객이 “어휴” “저런” 하고 장탄식을 터뜨리게 되는 것도 닮았다.

이쯤 되면 친근하다고 생각했던 이웃에게서 낯설고 짜증나는 타자(他者)를 발견하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나 스티븐 킹 소설의 서양적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듯하다. “타인은 나의 지옥”이라고 했던 사르트르의 저 섬뜩한 세계관 말이다.

하지만 연극은 두 번의 반전을 통해 타인의 고통에 진정 공감함으로써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르는 지극히 동양적 결말에 도달한다. 첫 번째 반전은 그로테스크한 손님의 아내를 통해 이뤄지고 두 번째 반전은 남자 집주인의 극단적 선택을 통해 이뤄진다. 이는 극장에서 직접 확인하는 게 좋겠다.

지난해 ‘마릴린 먼로의 삶과 죽음’으로 연출 데뷔한 조최효정 씨가 각색과 연출을 맡아 1인칭 독백체의 관념적 소설을 진짜 숨 막히는 입체적 무대언어로 탈바꿈시켰다. 손님 역을 소화한 신인배우 이정수 씨는 지난해 연극 ‘킬 유? 킬 미!’에서 너무 희화화됐던 자신의 ‘비범한 이미지’를 180도 전환해 강렬한 존재감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2만 원. 6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정보소극장. 02-889-3561∼2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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