線으로 파고든 ‘禪의 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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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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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추상미술의 태두 박서보 화백, 팔순 대규모 회고전

《“나는 후배들을 위해 길을 비켜설 의향이 없습니다. 자신 있거든 추월해 가라지요. 난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예술가로 남고 싶습니다.”(2002년 3월)

“점점 전화할 사람이 없어 쓸쓸하고 외롭습니다. 그래도 그림이 있어 버틸 수 있어요. 그림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워내는 마당입니다. 남과 다르게 생각하고 남과 다르게 행동하며 남과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고자 애써왔습니다. 아직 내가 갈 길은 멉니다.”(2010년 11월)》

한국 추상미술의 대부로, 이른바 ‘홍익대 사단’의 보스로 늘 맨 앞에서 한국 미술의 변화와 실험을 이끌었던 인물, 단색 톤에 심오한 정신의 깊이를 담아온 ‘묘법(描法)’의 작가, 박서보 화백(사진). 올해 팔순을 맞은 그가 대규모 개인전을 마련했다. 내년 1월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박서보 개인전.

이번 전시는 박 화백의 40여 년 묘법의 여정을 조명해보는 자리다. 묘법 시리즈와 에스키세(초고) 드로잉 등 50여 점을 선보인다.

묘법은 박서보 회화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1950년대 말부터 엥포르멜(informel) 운동을 주도하며 추상표현주의를 선보였던 박 화백은 1967년 묘법 회화를 통해 미술 인생의 전환을 감행한다. 끝없이 선을 긋는 행위를 통해 미술의 존재 의미와 사유의 본질에 도달하고자 한 것이다.

연필 선을 통해 드로잉의 본질에 맞서고자 했던 그는 1989년 한지(韓紙)를 이용한 묘법으로 발전해 갔다. 한지를 풀어 물감을 갠 뒤 이를 화면에 올려 손가락이나 도구를 이용해 종이를 일정한 간격으로 밀어낸다. 그 흔적과 함께 요철의 선들이 만들어진다. 선의 흔적들은 1990년 무채색 모노톤이었지만 2000년대 이후엔 밝고 화려한 색채로 바뀌었다. 붉은색, 초록색, 분홍색 등에서 만나는 좀 더 경쾌한 사유의 화면. 하지만 그 깊이엔 변함이 없다. 무채색이든 유채색이든 반복을 통해 만들어진 화면의 선들은 동양적인 깊은 사유의 세계로 이끌어간다.

박서보 화백의 2008년작 ‘묘법 No. 080206’. 무채색 한지작업에서 벗어나 밝고 화사한 초록색 톤을 통해 사유의 폭을 넓힌 작품이다. 사진 제공 국제갤러리
박서보 화백의 2008년작 ‘묘법 No. 080206’. 무채색 한지작업에서 벗어나 밝고 화사한 초록색 톤을 통해 사유의 폭을 넓힌 작품이다. 사진 제공 국제갤러리

박서보 화백의 1989년작 ‘묘법 No. 890530-3’의 부분.
박서보 화백의 1989년작 ‘묘법 No. 890530-3’의 부분.

“묘법은 그리는 법, 그 자체입니다. 서양 중심의 미술에서 벗어나 동양적인 정신을 표현하고자 한 겁니다. 그래서 묘법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워내는 그림입니다.”

평생 미술과 함께 살아온 원로 화백의 열정과 당당함, 미술에 대한 깊은 고뇌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전시다. 지난해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건강이 좋지 않지만 그는 ‘가장 성공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 지금도 매일 12시간 이상 작업을 한다. 그에게 미술은 단순한 창작 그 이상이다. 박 화백은 늘 “그림은 수신(修身)이다. 묘법 작업은 수련”이라고 말해 왔다.

자신을 비우고 자연과 합일이 되어 원초적인 그 무엇을 향해 걸어온 박 화백의 묘법. 그의 미술은 이제 비움을 넘어 치유로 나아간다.

“디지털시대 예술은 어떻게 존재해야 할까요. 시대에 대응해서 변해야 되죠. 하지만 흔히 생각하듯 디지털 기술과의 결합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을 위한 치유의 역할로 변해 가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게 미래의 예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비움의 단계가 거기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죠.”

팔순에도 여전히 변화를 꿈꾸고 있는 박 화백. 이게 바로 박서보 묘법의 진정한 매력이다. 02-735-8449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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