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해요 나눔예술]아름다운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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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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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땅 따뜻한 희망메시지… 외국인근로자센터 특별공연

손나 씨(왼쪽)가 한국에서의 경험담을 이야기한 데 이어 미르야 씨가 무대에 올라 이주 노동자들에게 용기를 북돋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손나 씨(왼쪽)가 한국에서의 경험담을 이야기한 데 이어 미르야 씨가 무대에 올라 이주 노동자들에게 용기를 북돋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희망이란 것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이나 마찬가지다. 원래 땅 위에는 길이란 게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루쉰의 단편소설 ‘고향’ 중에서)

KBS 2TV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한 독일인 미르야 말레츠키 씨(33)의 낭독에 객석 한쪽의 이주노동자들은 눈을 지그시 감고 그 뜻을 음미했다. 시월의 마지막 날 오후,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에선 특별한 공연이 열렸다.

유명인과 관객이 서로의 경험담을 통해 위안이 돼주는 ‘아름다운 동행’이란 나눔 무대. 다소 어두웠던 객석 분위기는 국악 뉴에이지그룹 ‘아이즈(A'is)‘가 영화 ‘첨밀밀’의 주제곡을 연주하면서 환하게 바뀌었다.

드라마 대장금의 ‘오나라’에 이르자 “아, 이 노래”라며 흥얼거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잠시 후 한국에 온 지 1년 6개월 됐다는 중국 산둥 성 출신의 손나 씨(27·여)가 무대에 올라 자신의 경험담을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피부색이 한국 사람과 같아 다행이었는데 입을 열자마자 들켰습니다. ‘어디서 왔냐?’ ‘몇 살이냐?’ ‘결혼은 했냐?’는 질문에 당황했습니다. ‘한국 사람들, 왜 이렇게 내 사생활을 궁금해하는 거야?’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알게 됐습니다. 상대의 나이와 신분을 알아야 존댓말과 반말을 구분해 쓸 수 있답니다.” 그가 상사에게 “너, 밥 먹었어?”라고 했다는 대목에선 공감한 듯 관객의 웃음이 터졌다. 손나 씨는 “‘다른 나라에 살게 되면 그곳 문화를 따라야 힘들지 않게 살 수 있다’고 한 어머니의 말씀을 이제야 실감한다”며 환한 미소와 함께 무대를 내려왔다.

“저는 이 자리에 설 자격이 별로 없어요…한국 사람들, 저를 친절하게 받아들였어요. 하지만 중국 친구나 베트남 친구들이 무시당하는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고 창피했어요.”

미르야 씨가 숨기고 싶은 우리의 자화상을 끄집어내자 이주노동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그는 1960년대 독일로 이주한 우리나라 광원과 간호사가 먼 이국땅에서 차별 대우를 받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교육에 힘써 성공한 사례를 들려줬다.

“그러니 여러분도 한국인이 독일에서 성공한 것 기억하고 힘내세요.” 미르야 씨의 인사에 이주노동자들은 환한 표정으로 답했다.
▼ 탈선 십대 보듬은 음악치료… ‘서울보호관찰소 음악회’ ▼

뮤지컬배우 길성원 씨(왼쪽)와 서울보호관찰소 김서영 주무관이 청소년 관객들에게 희망을 주제로 대화하고 있다. 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뮤지컬배우 길성원 씨(왼쪽)와 서울보호관찰소 김서영 주무관이 청소년 관객들에게 희망을 주제로 대화하고 있다. 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9일 오후 4시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서울보호관찰소 강당에선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 현악4중주가 동행한 음악회가 열렸다. 관객은 보호관찰을 받는 청소년들.

이들은 일주일에 1회 이상 관할 보호관찰소에서 ‘수강명령’이란 교육치료를 받는다. 베토벤의 미뉴에트를 배경으로 수강집행팀 김서영 주무관의 ‘너는 온 세상보다 소중하니까’라는 글이 강당에 퍼졌다. 오토바이를 훔쳐 40시간의 수강명령을 이수한 뒤 새 출발 하는 청소년에게 보내는 편지.

“…넌 어렵게 이야길 했지. ‘아버지는 알코올의존증으로 술만 드시면 난폭한 행동을 하고 어머니는 생계유지를 위해 밤늦도록 식당일을 해요.’ 난 콧날이 시큰해진 네게 위로할 말을 찾느라 머뭇거렸는데, 네가 이젠 괜찮다며 멋쩍게 웃어줘 조금이나마 안심할 수 있었단다….”

공연이 시작되자 처음엔 의무적인 교육이란 생각에선지 냉담하던 객석에서 간간히 박수도 나오며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다시 이어진 편지.

“나를 쓰러뜨렸던 건 불행이 아니라 절망이었고, 나를 일으켰던 것은 행운이 아니라 희망이었다. 뒤 돌아보며 살기엔 우리는 너무 젊고 가야 할 길이 많단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멋진 사내의 모습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숙연한 분위기는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 등 이어진 3곡의 춤과 함께 밝아졌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귀에 익은 음악도 나오고 괜찮던데요.”(김수진·가명·17세)

사회를 본 뮤지컬배우 길성원 씨(37)는 “퉁명스럽긴 해도 공연 중간중간 달라진 반응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팝이든 가요든 내가 의지하고 위로 받을 장르를 가졌으면 해요. 그러면서 다른 세상을 바라보는 기회가 되면 더욱 좋고요.”

소년원에서 10년을 근무한 경력이 있는 유스오케스트라 악보담당 김일섭 씨(54)는 “오늘처럼 작은 공연이 계기가 돼 음대에 진학한 소년원 출신 아이들도 있었다”며 “음악이 삶의 변화를 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박길명 나눔예술특별기고가 myung@donga.com
▼ 한-러 KRD포럼 무대 선 ‘춤아리 무용단’ ▼
정상들 앞 ‘한국의 멋’ 선보인 20분… 짧지만 큰 경험


10일은 춤아리 무용단엔 특별한 날이었다. 올해 처음 나눔예술에 합류한 이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맞춰 열린 한-러시아 대화 KRD포럼 폐회식 무대에 올라 무용단 활동의 보폭을 넓혔기 때문이다.

한-러 양국 정·재계와 학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이날 포럼에선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고려대 명예법학박사 학위 수여식도 있어 경비가 삼엄했다.

“공연 당일 오전 무대가 펼쳐질 서울 롯데호텔에서 곳곳의 보안검색대를 보고서야 중요한 무대라는 걸 실감했어요.”(송영환·36·춤아리 대표)

송 대표는 러시아 인사들에게 우리 춤이 어떻게 비칠까 우려 반 설렘 반이었다고 했다. 제33회 동아콩쿠르 무용 금상 수상자인 춤아리 단장 송영은 씨(30)는 전통무용을 통해 한국의 멋과 아름다움을 보여야 했기에 부담이 적지 않았단다.

“모든 공연에 최선을 다해 관객에게 다가갔듯이 이번 무대도 여느 때와 같은 마음으로 준비했어요.” 송영인 무용감독(29)은 이번 공연이 더욱 알찬 무용 레퍼토리를 짜는 데 큰 도움이 됐단다.

“모니터로 객석을 볼 수 있었는데 기대에 부푼 러시아 분들의 표정이 인상적이었어요. 20분의 짧은 공연이었지만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몰랐어요.” 큰 무대로 시야를 넓힌 춤아리 무용단의 다음번 나눔공연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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