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사람과 소통하는 언어” 한평생 고민의 흔적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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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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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용 교수, 일민미술관서 내일부터 작품전

《‘건축. 한평생 해볼 만한 일이겠다.’ 12일부터 내년 1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열리는 ‘감응(感應), 정기용 건축: 풍토, 풍경과의 대화’ 기획전은 불투명한 앞날을 고민하는 건축가 지망생에게 용기를 북돋워줄 자리다.》

전북 무주군 동쪽 언덕 위의 공설납골당 ‘추모의 집’은 첩산 사이로 보이는 인삼밭에서 모티브를 얻은 건물이다. 설계자인 정기용 교수는 ‘그늘에서 자라는 인삼처럼 죽은 영혼이 다시 삶을 얻는 그늘’을 생각했다. 서쪽 휴게공간은 망자를 애도하면서 마을의 삶을 편안히 조망할 수 있는 점이지대다. 사진 제공 일민미술관
전북 무주군 동쪽 언덕 위의 공설납골당 ‘추모의 집’은 첩산 사이로 보이는 인삼밭에서 모티브를 얻은 건물이다. 설계자인 정기용 교수는 ‘그늘에서 자라는 인삼처럼 죽은 영혼이 다시 삶을 얻는 그늘’을 생각했다. 서쪽 휴게공간은 망자를 애도하면서 마을의 삶을 편안히 조망할 수 있는 점이지대다. 사진 제공 일민미술관
정기용 성균관대 건축대학원 석좌교수(65·사진)가 청년 시절부터 최근까지 설계 작업을 위해 작성한 노트 60여 권과 스케치 100여 점, 건물 모형 20여 점, 사진 80여 점, 공들여 수집한 서적 등 갖가지 관련 자료 100여 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정 교수의 작업을 관찰하며 세상, 삶, 건축에 대한 그의 가치관을 짚어 본 다큐멘터리 영화 편집본과 단편 애니메이션도 함께 선보인다. 김태령 일민미술관장은 “어떤 한 건축가의 몇몇 작업 내용을 분석하기보다는 그가 걸어온 삶의 자취를 알기 쉽게 보여줌으로써 건축과 대중적 관심의 접점을 찾으려 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는 “건축언어는 특정인 사이의 암호가 아니라 여러 사람과 소통하는 자연언어여야 한다”는 정 교수의 뜻에 따라 그의 건축 작업을 기술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은 거의 넣지 않았다. 서울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는 도예를 전공한 뒤 프랑스로 건너가 서서히 건축의 길로 들어선 그의 인생 궤적을 차분히 읽어낼 수 있는 자료에 초점을 맞췄다.

무주 추모의 집 평면스케치.
무주 추모의 집 평면스케치.
정 교수는 2008년 펴낸 에세이집 ‘사람 건축 도시’에서 “건축은 근사한 형태를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조직하는 일”이라고 썼다. 그 말대로 전남 순천시와 전북 정읍시 등에 세운 어린이 도서관, 전북 무주군 공공건축 프로젝트,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복합문화시설 코리아나스페이스C, 강원 영월군의 흙집 구인헌 등의 건물에서 일관되게 드러나는 것은 기기묘묘한 형태적 특이성이 아니라 ‘치열한 보편성’이다. 기획전에 진열된 드로잉은 사실 건축 설계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늘 손에서 놓지 않는, 그저 일상적인 작업의 흔적일 뿐이다.

제주 4·3평화공원 콘셉트 스케치.
제주 4·3평화공원 콘셉트 스케치.
하지만 3개 층의 전시실에 차곡차곡 쌓은 자료들을 모두 훑고 난 뒤 느껴지는 감동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그것은 드로잉이나 모델 하나하나의 만듦새 때문이 아니다. 삶의 어느 한 순간에도 진지한 탐구의 시선을 놓지 않은 한 건축가의 진심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최초의 방, 최초의 건축’이라는 제목을 붙인 스케치는 ‘땅의 순수한 논리’를 파고든 건축가의 고민을 잘 보여준다. 빈 땅 위에 벽으로 경계를 만들어 다시 공간을 나눈 뒤 하늘과 맞닿은 방법을 궁리한다. 땅으로부터 고민해 세운 건물이 땅을 거슬러 압도할 리 없다.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된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드로잉 ‘이것은 건축이 아니다(Ceci n'est pas l'architecture)’를 연상시키는 내용이다.

3층 전시실의 애니메이션 ‘나무를 찾는 소녀’(3분 3초)는 ‘고양이를 부탁해’의 정재은 감독이
무주 진도리 마을회관 입면스케치.
무주 진도리 마을회관 입면스케치.
정 교수와의 대화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스토리를 엮고 이정익 씨 등 3명의 애니메이터가 만든 작품이다. 정 교수를 형상화한 안경 쓴 소녀가 자연, 도시, 사람을 겪으며 삶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았다. 화가를 꿈꾸던 소년이 어떤 길을 따라 건축가로 성장해 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정 교수는 11일 오후 5시 반 개막 리셉션에서 전시 주제에 대해 15분간 강연한다. 월요일 휴관, 무료. 02-2020-2060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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