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홍수 시대, 글쓰기는 삶을 건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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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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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숙 씨 장편 ‘라이팅 클럽’ 작가들 창작욕망 고스란히

수사(修辭)는 오늘날 어느 때보다 위력적이다. 감각적인 광고 카피, 재치 있는 말솜씨가 넘치는 TV 예능 프로그램,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여러 사람과 공유하는 문장들…. 더 세련되게 말하고 더 잘 쓰고 싶은 욕망이 커져만 가는 시대다.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꼭 문학작품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자기 얘기를 글로 쓰고 싶어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저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로 출발했고요.”

강영숙 씨(43·사진)의 장편소설 ‘라이팅 클럽’(자음과모음)은 글쓰기를 빼놓고는 인생을 상상할 수 없는 모녀의 이야기다. 잡지에 산문 하나를 발표한 경력이 전부인 엄마는 그 이력만 갖고 계동의 후미진 동네에 ‘글짓기교실’을 열어 살아간다. 글짓기교실에서 만난 건달 때문에 실연의 고통을 앓기도 하고 처음 본 여성 J 작가가 이름 있는 문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지독한 질투에 떨기도 한다. 그런 엄마를 비아냥조로 ‘김 작가’라고 부르는 딸 영인의 꿈은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진짜 작가’가 되는 것이다.

“영인은 말하자면 한 손에는 돈키호테의 창을 들고 있고 다른 한 손에는 타자기를 들고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비루함을 글쓰기로 견뎌보고 싶어 해요. 누군들 그러지 않을까요. 자신의 비루함을 견디게 할 무엇이 필요하지요. 글쓰기든, 다른 무엇이든. 이 소설은 그 ‘무엇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좋아한다고 고백했던 친구로부터는 비웃음만 사고, 대학 진학은 언감생심이며, 영어회화 교재 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취직한 지 일주일 만에 그만뒀고, 생애 첫 동거남은 혁명을 꿈꾼다며 방구석에 틀어박혀 혁명 책만 읽는다. 한순간도 햇볕이 들지 않는 것 같은 이런 영인의 인생을 버티게 해주는 것이 독서와 글쓰기다. 소설은 글쓰기라는 삶의 목적이 영인의 삶 자체로 바뀌는 과정을, 그의 굴곡진 인생을 통해 보여준다.

영인을 가르치는 J 작가를 통해 ‘글쓰기 매뉴얼’을 확인할 수 있는 점도 흥미롭다. “설명하려 들지 말고 보여줘.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라고.” “간결하고 분명한 묘사 뒤에는 반드시 작가의 사고 과정이 드러나야 해.” “많이 읽어야 한다고. 작가들이 진실한 문장 하나를 가지려고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는지 알게 될 거야.”

“작가들이 한번쯤 글쓰기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어 하고 나 역시 그랬다”는 강 씨는 “나이 들어 소설가로서의 이력이 쌓인 뒤에야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아주 빨리 쓰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글쓰기라는 게 쉬운 것처럼 보이지만 점점 어려워진다는 걸 깨닫는 길에서 (이 소설이) 쓰였다”고 했다. 어느 때보다 언어가 쉽게, 많이 소비되는 세상에서 글쓰기란 실은 ‘삶 전체를 대가로 하는 모험’(평론가 정여울)임을 확인시키는 작가의 말이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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