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보이는 음악’과 ‘들리는 그림’의 어긋난 운명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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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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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3cm’
대본★★★ 연기★★★☆ 연출★★★☆ 음악★★★☆

색맹이 된 화가(장혁진·오른쪽)와 카페 주인이 된 바이올리니스트(문숙경)의 3cm 어긋난 사랑이 빚어낸 깊은 그리움을 그려낸 창작극 ‘3cm’. 사진 제공 극단 하땅세
색맹이 된 화가(장혁진·오른쪽)와 카페 주인이 된 바이올리니스트(문숙경)의 3cm 어긋난 사랑이 빚어낸 깊은 그리움을 그려낸 창작극 ‘3cm’. 사진 제공 극단 하땅세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비를 피해 한 건물의 지하실로 뛰어든 여인(문숙경)은 작은 화실을 발견한다. 그림을 보던 여인은 문득 그림을 배우고 싶어진다. 화실을 지키던 화가(장혁진)는 “더 이상 그림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여인은 딱 일주일만 배우겠다며 화가를 설득한다. 화가는 5만 원의 강습료 선불을 요구한다. 바이올리니스트인 여인은 “거래보다는 교환”이라며 대신 자신이 바이올린을 가르쳐주겠다고 한다.

연극 ‘3cm’(조태준 작·연출)의 서막이다. 화가와 바이올리니스트의 우연한 만남. 가을 분위기에 어울리는 낭만적 구도다. 그 다음 공식은 뭐일까. 뜨겁게 타오르던 그들의 사랑이 운명의 장난으로 비극적 파국을 맞는 것이다. 절반은 맞았고 절반은 틀렸다.

비극적 파국은 있어도 뜨거운 사랑은 없다. 사랑은 오히려 비극 다음에 찾아온다. 엇박자의 사랑. 연극의 제목은 바로 그 어긋난 운명의 짧은 거리를 말한다.

연극의 재미는 3cm라는 크기 또는 거리가 예술과 인생을 통해 변주되는 것을 지켜보는 데 있다. 그것은 무당벌레처럼 작은 존재의 미학을 화폭에 옮기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크기다.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 G음(솔)과 바로 이웃한 A음(라)을 낼 때 현 위의 거리이다. 후천적으로 색맹이 된 화가가 절망적으로 붓질한 그림의 제목이자 음악가의 길을 포기한 여인이 개장할 카페의 이름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어쩌면 사랑의 열매를 맺었을지도 모를 그들의 사랑이 어긋난 거리이다.

‘보이는 음악’과 ‘들리는 그림’ 그리고 그 둘의 변증법적 결합으로서 시의 미학을 무대언어화하려는 열정이 풋풋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예술적 교류가 구체적 삶에 어떤 윤리적 변화를 가져왔는지가 빠진 탓에 다소 공허하게 느껴진다. 여주인공을 수수께끼 같은 존재로 끝까지 타자화하기보다는 남자와 마찬가지로 ‘욕망하는 주체’로 형상화하려는 노력이 못내 아쉽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i: 1만5000원∼2만 원. 11월 4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스튜디오76. 02-6406-8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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