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폭탄주 뇌관?… 섞이지 않은 한결같은 맛에 빠져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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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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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스키 성지 스코틀랜드 아일레이産 등 다양한 ‘싱글 몰트’ 즐기는 법

싱글 몰트 위스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싱글 몰트 위스키를 취급하는 카페나 바도 늘고 있다. 신라호텔 더 라이브러리 바는 싱글 몰트 위스키의 종류가 다양해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곳 가운데 하나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싱글 몰트 위스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싱글 몰트 위스키를 취급하는 카페나 바도 늘고 있다. 신라호텔 더 라이브러리 바는 싱글 몰트 위스키의 종류가 다양해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곳 가운데 하나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당신은 싱글 몰트 위스키를 매일 마십니까?”

“예스.”

“블렌디드 위스키는 안 마십니까.”

“맛 좋은 아일레이 싱글 몰트가 코앞에 있는데, 왜 일부러 블렌디드 위스키 같은 걸 마신단 말이오? 그건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려는 순간에 텔레비전 재방송 프로그램을 트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겠소?”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 여행’의 한 구절. 작가가 싱글 몰트 위스키의 ‘성지(聖地)’로 표현한 스코틀랜드 아일레이(Islay·영어식으로는 아일레이라고 하지만 현지에서는 아일라로 읽는다) 섬 주민과의 대화다. 그러면서 또 무라카미는 ‘이것을 신탁(神託·인간이 판단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의 해결을 위한 인간의 물음에 신(神)이 응답하는 것)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한단 말인가’라고 표현했다. 작가는 “아일레이 위스키를 좋아하는 열광적인 팬에게 ‘아일레이의 싱글 몰트’라는 말은 은혜로운 교조님의 신탁과도 같은 것이다”라는 문구를 인용하기도 했다.

인구 3800명의 작은 섬. 보이는 것이라고는 바다와 하늘, 그리고 구름뿐인 이곳이 어째서 무라카미에게, 또는 전 세계 싱글 몰트 위스키의 마니아들에게 성지로 통하는 것일까. 싱글 몰트 위스키는 어떻게 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일까.

○ 커지는 싱글 몰트 위스키 시장


최근 몇 년간 ‘와인 바람’과 ‘막걸리 열풍’이 차례로 한국을 휩쓸면서 상대적으로 독주인 위스키에 대한 관심은 점점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싱글 몰트 위스키에 대한 관심만은 더 커졌다. 실제로 지난해 전체 위스키 시장은 2008년보다 10% 정도 줄었지만 싱글 몰트 위스키의 판매량은 17%가량 늘었다. 2008년 4만1754상자(8.4L·700mL 기준 12병)가 팔린 데 비해 지난해에는 4만8951상자가 팔렸다.

위스키라면 폭탄주의 ‘뇌관’ 정도로 여겨지던 음주 경향에서 위스키 고유의 맛과 향을 찾는 쪽으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모든 위스키가 저마다 개성 있는 풍미를 가지고 있지만 싱글 몰트 위스키는 그 개성을 가장 뚜렷하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조명받고 있다. 현재 국내 싱글 몰트 위스키 시장은 글렌피딕과 맥캘란이 7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글렌피딕과 맥캘란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많이 팔리는 싱글 몰트 위스키 브랜드다.

하지만 실제 공식적으로 수입돼 유통되는 싱글 몰트 위스키만 60종류가 넘어 조금만 눈을 돌리면 다양한 싱글 몰트 위스키를 맛볼 수 있다. 글렌피딕과 맥캘란을 제외하면 글렌리벳과 싱글톤, 발베니, 글렌모렌지 등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제품들이다. 싱글톤은 한국 등 아시아 소비자의 입맛에 맞춰 디아지오가 만든 브랜드다.

위스키는 만드는 원료에 따라 ‘싹을 틔운 보리(몰트·Malt)’로 만든 ‘몰트 위스키’와 보리보다 가격이 싼 옥수수나 호밀 등의 곡물로 만든 ‘그레인(Grain) 위스키’, 그리고 이들을 섞어 만든 ‘블렌디드(Blended) 위스키’로 나뉜다. 몰트 위스키 가운데 단 한 곳의 증류소에서만 만든 위스키가 싱글 몰트 위스키다. 요즘은 몰트 위스키라고 하면 보통 싱글 몰트 위스키를 의미한다. 싱글 몰트 위스키는 맥아로만 만들기 때문에 생산량이 많지 않다. 숙성 기간도 길어서 이 과정에서 숙성시키는 오크통이나 사용하는 물, 생산 지역의 풍토 등에 따라 확연히 다른 풍미를 갖게 된다.

○ 저마다 다른 개성…독특한 향과 맛

앞의 대화에 나온 아일레이 지역의 싱글 몰트 위스키에서는 ‘갯내음’이 난다는 것이 무라카미의 표현이다. 굳이 이 표현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아일레이 지역의 싱글 몰트 위스키에서 바다나 해초의 향기를 찾곤 한다. 라프로익 같은 브랜드에서는 ‘약 냄새(또는 병원 냄새)’가 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쨌든 위스키 깊숙이 바다 향기가 스며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파도를 담은 바닷바람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불어오는 섬 마을에서 만들어지는 위스키인 만큼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아일레이에서 나는 위스키의 향이 모두 비슷하다는 뜻은 아니다. 아일레이 지역의 여덟 개 증류소에서 생산되는 위스키는 저마다 독특한 고유의 향과 맛이 있다. 또 같은 증류소에서 생산된 위스키라고 해도 얼마나, 또 어떻게 숙성시켰느냐에 따라 향과 맛이 서로 다르다. 셰리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위스키는 깊고 드라이한 느낌이, 버번 오크통을 거친 위스키는 감미로운 느낌이 나는 식이다.

이런 ‘공식’은 아일레이뿐 아니라 싱글 몰트 위스키 전체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처럼 브랜드마다, 또 제품마다 그 고유의 개성을 확실히 가지고 있다는 점이 싱글 몰트 위스키의 매력이다. 와인과도 닮아 있다.

스코틀랜드에서 아일레이 지역을 제외하고 증류소가 있는 섬들에서 생산되는 몰트 위스키를 아일랜드싱글 몰트 위스키로 따로 구분한다. 스코틀랜드 최북단 오크니 섬의 하일랜드 파크, 애런 섬의 애런, 스카이 섬의 탈리스커 등이 잘 알려진 증류소다. 탈리스커는 조니워커 블루 라벨에 블렌딩되는 몰트로 유명하다.

스코틀랜드 싱글 몰트 위스키 산지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스코틀랜드 동북부 스페이사이드 지역이다. 스코틀랜드 싱글 몰트 위스키의 절반 가량이 생산되는 증류소 밀집 지역이다. 지리적으로는 하일랜드에 속하지만 증류소가 많아 보통 따로 구분한다. 글렌피딕, 맥캘란, 글렌리벳 등 많이 팔리는 브랜드 위스키 대부분이 이 지역에서 나온다.

일본은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싱글 몰트 위스키를 생산하는 나라다. 1920년대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 주조법을 배운 일본은 야마자키, 요이치 등의 수준 높은 싱글 몰트 위스키를 빚고 있다.

○ 오랜 숙성의 맛을 즐기는 여유를

싱글 몰트 위스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많은 종류의 싱글 몰트 위스키를 취급하는 카페나 바가 늘어나고 있다. 이 가운데 위스키 애호가들이 전통적으로 즐겨 찾는 곳이 신라호텔의 로비 바인 더 라이브러리다. 쉽게 접하기 어려운 고가(高價)의 빈티지 위스키를 비롯해 각 지역의 다양한 위스키 메뉴를 구비해 잔으로 판매한다. 싱글 몰트 위스키를 비교해 시음할 수 있는 테이스팅 메뉴도 있다. 각 지역 위스키의 특징을 설명한 안내가 적힌 메뉴가 눈에 띈다. 파크하얏트호텔의 팀버하우스나 리츠칼튼호텔의 더 리츠 바, 그랜드하얏트호텔의 헬리콘, W호텔의 우바 등도 싱글 몰트 위스키를 즐길 만한 호텔 바다.

바 중에는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미스터사이몬 바와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커피바 케이, 청담 클럽 등이 애호가들 사이에서 명소로 통한다. 미스터사이몬 바에서도 테이스팅 메뉴를 제공하고 있다.

싱글 몰트 위스키를 즐기는 방법을 이야기할 때 얼음은 늘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싱글 몰트는 상온(섭씨 20도 정도)에서 스트레이트로 즐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흔히 얼음을 섞는 온더록스는 ‘금기’에 가깝다. 얼음이 미각을 마비시켜 싱글 몰트 특유의 향과 맛을 빼앗아 간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얼음을 섞어 마시기를 좋아하는 애호가들은 얼음이 녹는 과정에 따라 농도가 다른 싱글 몰트 위스키의 맛을 느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얼음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큰 얼음으로 천천히 녹는 맛을 즐기라는 쪽과 잔 얼음을 넣어 다양한 느낌을 맛보라는 쪽이다. 전자(前者)를 선호하는 애호가를 위해 디아지오코리아는 얼음의 크기를 키우고 공 모양으로 만들어 녹는 속도를 늦춘 싱글 몰트 위스키 전용 얼음 ‘싱글볼’을 선보이기도 했다.

스트레이트와 온더록스 사이에는 상온의 물을 약간 섞어 마시라는 사람들이 있다. 독한 알코올 기운의 부담을 덜면서도 위스키의 향을 고스란히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가장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방법이기도 하다. 위스키에서 사과향이나 꽃향기 벌꿀 향기를 은은하게 느껴보고 싶다면 이렇게 마셔보는 것도 좋다.

하긴 위스키를 어떻게 즐기든 그건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다. 더 중요한 것은 싱글 몰트 위스키를 즐기는 마음의 자세. 단지 ‘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시는 ‘폭탄주의 뇌관’으로서의 위스키가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들과 또는 혼자서라도, 오랜 숙성의 향과 맛을 즐기려는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이 싱글 몰트 위스키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 아닐까.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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