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소중한 친구가 어느날 좀비로 변한다면…

동아일보 입력 2010-09-11 03:00수정 2010-09-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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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들/김중혁 지음/380쪽·1만1000원/창비
그 좀비, 맞다. 호러 영화나 공포소설의 단골들. 생각도 없이, 의식도 없이, 이리저리 움직이기만 하는 시체들. 김중혁 씨(39)의 ‘좀비들’은 그 좀비들 이야기다.

소설집 두 권으로 단숨에 문단의 스타가 된 그인 만큼 첫 장편을 집필한다는 소식에 자연히 기대가 모아졌다. 장편을 붙잡은 지 꼬박 3년 만에 ‘좀비들’이 나왔다.

한국에선 유례를 찾기 어려운 좀비 소설이니 그것만으로도 일단 희귀하다. 그런데 여타의 공포물처럼 등골을 서늘하게만 하지 않는다. 매끄럽게 잘 읽혀 장르소설의 문법을 비교적 충실하게 따르는 듯 보이지만, 휙휙 넘기고 “재미있다”고 평하고 말기엔 뭔가 찜찜하다. 그 ‘무엇’이 김중혁 씨가 만들어낸 좀비들의 다른 부분이다.

주인공 채지훈은 전국을 다니면서 휴대전화 수신감도를 측정하는 게 직업이다. 그는 일을 하다가 어떤 전파도 잡히지 않는 무통신 지역인 ‘고리오 마을’을 발견한다. 얼마 뒤 죽은 형이 남긴 LP판 중 ‘스톤플라워’라는 1960년대 록그룹의 음악에 빠져들어 그에 관한 자료를 도서관에서 찾던 중에 도서관의 사서 ‘뚱보 130’을 만나 친구가 된다. 채지훈은 ‘뚱보 130’의 도움으로 스톤플라워의 리더가 쓴 자서전을 번역한 홍혜정 할머니를 찾아내고, 할머니가 있는 고리오 마을로 들어간다. 자상한 홍혜정 할머니와 채지훈, 뚱보 130은 금세 친구가 되지만, 고리오 마을의 비밀로 인한 말다툼 끝에 세 사람의 사이는 서먹해지고 이내 홍혜정 할머니가 갑작스럽게 죽는 일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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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 씨는 소설 속 ‘좀비’에 대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우리가 타자를 어떻게 존재하는 방식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지의 문제를 말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세 사람은 유사 가족이다. 피가 섞이지 않은 이들이 관계 맺기를 통해서 정을 나누고 삶을 나눠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순혈주의가 두텁던 한국 사회도 다문화 가정이 생겨나면서 새로운 관계 맺기에 들어갔다. ‘좀비’를 ‘타자’로 읽을 수도 있지 않겠냐는 작가의 힌트가 헤아려지는 부분이다.

좀비가 나오는 것은 홍혜정 할머니가 죽은 다음부터다. 할머니의 딸 홍이안과 만나게 된 채지훈과 뚱보 130. 이들 앞에 느닷없이 좀비가 나타나고 이들은 혈투 끝에 좀비를 처치한다. 다음 날 무장한 군인들이 나타나면서 고리오 마을은 봉쇄된다. 그러나 마을 곳곳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좀비로부터 채지훈과 뚱보 130, 홍이안은 도망 다니는 것밖엔 할 수 없다. 급기야 뚱보 130이 좀비들의 공격을 받고 좀비로 변하는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작가의 시선은, 기존 공포소설에서 좀비를 ‘처단해야 하는 괴물’로 묘사한 것과는 다르다. 그가 보기에 이 괴물은 ‘몸은 움직이지만 기억이 없는’ 안타까운 대상이다. 엄마와 형의 죽음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채지훈, 죽은 어머니의 지난 인생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홍이안 등 소설의 인물들은 좀비들과 부대끼는 과정에서 죽은 사람들을 소중하게 기억하는 법을 알게 된다. 이 작품을 두고 작가가 “잊고 있던 기억에 대한 이야기,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하는 이유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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