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사랑이 이다지도 아름다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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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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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에 박힌 별이 떨리고… 그윽한 그리움의 향기가…

◇뺨에 서쪽을 빛내다/장석남 지음/112쪽·7000원/창비

시집 ‘뺨에 서쪽을 빛내다’에서 일상에서 길어 올린 소재들에 고요한 서정성을 부여한 장석남 시인. 동아일보 자료 사진
시집 ‘뺨에 서쪽을 빛내다’에서 일상에서 길어 올린 소재들에 고요한 서정성을 부여한 장석남 시인. 동아일보 자료 사진
‘나의 가슴이 요정도로만 떨려서는 아무것도 흔들 수 없지만 저렇게 멀리 있는, 저녁빛 받는 연(蓮)잎이라든가 어둠에 박혀오는 별이라든가 하는 건 떨게 할 수 있으니 내려가는 물소리를 붙잡고서 같이 집이나 짓자고 앉아 있는 밤입니다 떨림 속에 집이 한 채 앉으면 시라고 해야 할지 사원이라 해야 할지 꽃이라 해야 할지 아님 당신이라 해야 할지 여전히 앉아 있을 뿐입니다’(‘오막살이 집 한 채’에서)

사랑이 이렇게나 아름다운 것이었던가? 저녁 빛 받는 연잎과 어둠에 박힌 별을 떨게 할 수 있을 만큼? 물론 우리는 사랑이 어떤 감정인지 알고 있다. 장석남 씨의 새 시집은 그러나, 우리가 그 감정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을 무색하게 한다. 사랑은 가령, 묵을 먹을 때도 생각난다. 묵의 매끄러운 살은 연인의 부드러운 살을, 입 안에 오래 남는 떫은맛은 그만큼 오래가는 사랑의 상처를, 묵을 뜰 때의 아슬아슬한 수저질은 사랑에 뒤따르는 불안한 떨림을 생각나게 한다. 사랑이 묵 같은 것이었다니, 시인이 아니었으면 몰랐을 일이다! ‘묵을 먹으면서 사랑을 생각한다오/서늘함에서/더없는 살의 매끄러움에서/떫고 씁쓸한 뒷맛에서/그리고//아슬아슬한 그 수저질에서/사랑은 늘 이보다 더 조심스럽지만/사랑은 늘 이보다 위태롭지만’(‘묵집에서’) 아침저녁으로 개고 펴는 요는 또 어떤가. ‘요는 깔고 몸을 뉘는 물건/사랑을 나누는 물건/어느 날 죽음을 맞는 물건/(…)요를 펴고 누워/하늘을 부른다/몸은 요를 부르는 물건/사랑은 요를 부르는 물건/죽음은 요를 부르는 물건/꽃을 펴듯 요를 편다’(‘요를 편다’에서)

“겉모습이 귀공자처럼 생겨서 젊은 시절 한때 영화배우로도 캐스팅된 적이 있지만 그는 사실 섬사람이다. 섬사람이 섬을 떠나 도회로 와 문명인이 되려 할 때의 슬픔을 나 역시 조금은 알 듯하다.” 극작가 최창근 씨는 발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그 슬픔은 시 곳곳에 스며 있다. 시인이 소중하게 열어 보이는 것들은 이를테면 저녁볕, 나리꽃, 구름이다. 시인의 귀는 물소리가 수척해지는 것을 듣고(‘여름의 끝’), 기러기 떼가 커다란 달밤을 떠메고 내려앉아 쉬는 것을 본다(‘인제에서’). 이 화려한 이기(利器)의 문명에서 그가 노래하는 이 자연의 시들에서는 그리움이 그윽하게 풍겨난다. ‘허기진 창자를 삐뚜름히 비추는 저녁볕/노는 아지랑이//솥을 열다//서쪽을 열고/뺨에 서쪽을 빛내다’(‘서쪽 1’에서)

시인의 말은 사뭇 겸손하다. 춘천휴게소 뒤편에서 한 남자가 처음 보는 악기의 줄을 고르는 것을 본 시인. 바람이 잣나무를 밀어 흔들고 산등성이 아래에서까지 별이 빛나던 때, 그는 “그 악기의 이름이 혹 시였을까? 그가 조율하던 것이 혹 사랑이었을까?”라고 말한다. 많은 말로 쌓아놓은 시편을 그때 그 사내가 만지던 줄의 떨림과 견줄 수 있겠느냐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시를 다 지우다’라는 제목의 시가 시여서 다행이다. 행여 실제였다면 우리는 이토록 아름다운 사랑의 시편들을 만나지 못할 뻔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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