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사람의 행동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

  • Array
  • 입력 2010년 7월 24일 03시 00분


코멘트

◇버스트/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 지음·강병남, 김명남 옮김/448쪽·1만8000원/동아시아

《철학자 카를 포퍼는 1959년 ‘예측과 예언’이라는 에세이에서 “인류의 가장 오래된 꿈이 바로 예측의 꿈이다. 눈앞의 미래를 우리가 알 수 있을 것이라는 꿈, 그렇게 알아낸 지식에 맞게 정책을 조정함으로써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이다. 우리는 일식을 아주 정확히,그것도 아주 한참 전부터 예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혁명을 예측하는 것도 혹시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썼다. 그리고는 곧 거기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인간이 관련된 문제에서는 예측이 불가능하므로 괜히 고민할 것조차 없다”는 것이었다.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의 권위자인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 교수는 이 책에서 포퍼의 견해에 이의를 제기한다. 인간의 행동에 숨은 패턴을 밝혀내는 것, 그리고 그 원인을 이해하는 작업이 점점 가능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포퍼 시대에 비해 크게 발달한 디지털 문명이 전제조건으로 깔려 있다.》

책 ‘링크’에서 “모든 것은 모든 것에 잇닿아 있다”는 네트워크 이론으로 소셜 네트워크 시대의 도래와 네트워크 과학의 진화를 예고했던 바라바시 교수가 이번 책에서 파고든 것은 인간의 행동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인간 역학(Human Dynamics)’이다.

그는 책에서 이미 어느 정도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는 관련 연구 결과들을 소개한다.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박사과정 대학원생 네이선 이글은 2004년 100명에게 스마트폰을 무료로 나눠줬다. 언제 누구와 통화를 하는지, 어디에 있는지 등 휴대전화 소유자의 모든 것을 수집한다는 전제조건이 붙었다. 1년 뒤 모은 45만 시간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학생들은 주중 오후 10시∼다음 날 오전 7시에는 주로 집에 있었고 오전 10시∼오후 8시에는 주로 학교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 결과를 통해 예측도 상당 수준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경영학부 학생의 사례를 봤을 때 오전에 있는 위치를 알면 90%의 정확도로 오후 위치를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이다. 96%까지 예측 가능한 학생도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보안카메라(폐쇄회로TV·CCTV)와 휴대전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같은 기기가 폭발적으로 보급되는 요즘에는 사람의 행동을 추적하는 데 쓸 도구가 더욱 넘쳐난다. 게다가 우리의 행동은 어딘가에 자취를 남긴다. e메일은 서비스 공급자의 서버에 저장되고, 통화 정보는 통신사의 데이터베이스에 남고, 언제 무엇을 샀는지는 신용카드 회사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을 예측하는 기술은 급속히 발전할 것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루마니아 서북부 트란실바니아 지역의 화가 보톤드 레세그흐가 그린 삽화. 저자는 “책 속의 삽화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 다리를 놓음으로써 역사적 공간의 귀중한 요소와 과학의 필수불가결한 사실을 한 평면 위에서 만나게끔 하는 목적으로 그린다”고 설명했다. 그림 제공 동아시아
루마니아 서북부 트란실바니아 지역의 화가 보톤드 레세그흐가 그린 삽화. 저자는 “책 속의 삽화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 다리를 놓음으로써 역사적 공간의 귀중한 요소와 과학의 필수불가결한 사실을 한 평면 위에서 만나게끔 하는 목적으로 그린다”고 설명했다. 그림 제공 동아시아
사람들은 곧 ‘미래의 프라이버시’를 박탈당할 위기에 놓인 것이지만 기업으로서는 더 좋은 비즈니스 도구가 생기는 셈이다. 그뿐만 아니라 전염병의 확산 경로를 예측하거나 테러를 방지하는 일을 하는 곳에서도 유용한 수단을 갖게 될 것이다.

저자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 이전에도 인간의 행동이 예측 가능한 패턴을 보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옛날 자료를 뒤적이다 아인슈타인이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에 대한 통계를 발견했다. 그는 아인슈타인이 편지를 주고받은 패턴에서 자신의 e메일 사용 패턴과 닮은 점을 발견했다. 평소에는 하루 한 통 정도 편지를 주고받거나 또는 아예 왕래가 없는 날이 며칠 이어지다가, 폭발적으로 편지가 오가는 경우가 일정한 간격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완전히 무작위적인 줄 알았던 인간의 행동이 어느 정도 패턴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패턴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폭발성’을 저자는 ‘버스트(bursts)’로 표현했다. 어느 순간 갑자기 e메일이 쏟아지고, 전화가 울리고, 손님이 찾아오고 하는 일이 몰리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는 ‘숨어있는 손’에 의해 벌어지는 현상으로 복잡하게 얽힌 소셜 네트워크가 특징인 오늘날에는 더욱 자연스러운 산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의 웹사이트의 뉴스 클릭 횟수 조사에서도 뉴스 클릭은 하루 중 균일한 간격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몇몇 폭발적 시간에 집중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자는 이를 ‘예욋값’이 존재하기 때문으로 정의했다. 일상적 분포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지나치게 돈이 많은 갑부, 지나치게 희생자가 많은 전쟁 등이 존재하는 것도 예욋값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예욋값까지 정밀하게 예상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예욋값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확인하는 것 역시 패턴 예측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책은 과학적 팩트를 제시하는 장(章)과 역사를 재구성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장을 오가면서 전개된다. 인간 행동의 무작위성과 예측 가능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1500년대 초 헝가리에서 일어난 십자군운동을 끌어들였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죄르지 세케이는 역사의 아이러니로 인해 의외의 인생 행보를 밟았던 불운한 십자군 대장으로 무작위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반면 십자군 원정의 불행한 결말을 일찌감치 예견했던 귀족 이슈트반 텔레그디는 예언과 예측의 가능성을 강조하는 인물이다. 어려운 주제를 이야기에 빗대 풀어가려 한 저자의 의도는 알겠지만 역사를 재구성한 팩션과 현대 과학의 팩트를 전하는 부분을 너무 자주 오가는 바람에 책의 리듬이 끊기는 듯한 느낌을 준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