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소통]“해체된 인체, 새로운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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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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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불꽃 삶’ 살다간 류인
中베이징서 11주기 조각전

인체를 통해 절망과 희망의 언어를 교직했던 조각가 류인의 ‘급행열차’. 베이징=고미석 기자
인체를 통해 절망과 희망의 언어를 교직했던 조각가 류인의 ‘급행열차’. 베이징=고미석 기자
눈 돌리는 곳마다 온전한 몸이 없다. 얼굴이나 팔다리가 절단된 채 내던져진 육체. 한결같이 파편처럼 부서지고 과장된 몸은 손가락과 발가락까지 절규하는 듯하다. 폭발하는 듯한 에너지와 열정이 느껴지는 조각들. 탐욕과 고독 속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인간의 불안한 실존,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은유가 녹아 있다.

19일 중국 베이징의 798예술특구에 자리한 T아트센터에서는 조각가 류인(1956∼1999)의 11주기를 기리는 ‘황토현 서곡’전이 개막했다. 질주하는 기관차처럼 일곱 명의 남자가 부서진 몸으로 줄지어 서 있는 ‘급행열차’, 삼각대에 쇠사슬로 매달린 인체를 중심에 둔 설치작품 ‘황토현 서곡’과 더불어 ‘밤, 혼’ ‘입산’ 등 13점을 3개 층에서 펼쳐낸 자리다.

이날 개막식에는 부인 이인혜 씨와 절친했던 조각가 정현 씨를 비롯해 미술평론가 윤범모 최열 최태만 조은정 씨 등 그의 예술을 아끼고 사랑하는 한국의 미술 관계자들과 현지 관객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전시를 둘러본 참석자들은 43년 동안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작가의 열정에 경의를 표했다.

“그의 작품은 우리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폭과 깊이를 지니고 있어 울림 이상의 전율을 준다.”(윤범모) “류인은 20세기 후반기 권진규 이후 최고의 구상 조각가다. 인체 표현을 빌려 그는 참을 수 없이 폭발하는 시대를 압축해 보여주었다.”(최열) “그의 작품은 음악으로 치면 하드록 같은 작품이다. 해체된 인체는 비극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이는 새로운 탄생을 위한 고통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최태만)

한국 현대미술을 추도한 추상화가 류경채(1920∼1995)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류인. “인체는 표현의 목적이 아니라 표현의 수단이다”, “작품은 현실에 대한 깨우침이며 살아있음의 확인이다”. 그는 이 같은 믿음 아래 추상이 대세였던 시대를 거슬러 전통적 구상 조각 속에 현대적 사유와 구조를 표현했다. 남성의 몸을 소재로 대상을 거침없이 해체하고 재구성한 역동적 조각으로 절망과 한계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몸부림을 표현한 것.

그의 조각이 해외에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하나하나 작품을 꼼꼼히 살펴보던 중국 조각가 톈화펑 씨는 “전통과 현대문화, 조각 언어와 개념 형식의 결합 등은 아시아 작가들의 공통 과제인데 이번 전시는 우리에게 아주 의미 있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었다”며 “한국 구상 조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T아트센터 손국진 대표는 “이번 전시는 인체 구상 조각이 중심을 이루는 중국에 류인 작품을 알리고자 마련했다”며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하는 베이징의 예술특구에 그의 작품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절망적 형상 속에서 역설적으로 인간 존재의 존엄에 대한 성찰을 담은 그의 조각에는 폭발과 절제, 절망과 희망이 공존한다. 발산하면서 동시에 끌어당기는 조각의 힘. 인간을 옭죄는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웅숭깊은 메시지를 전한다.

베이징=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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