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사람들, 그림 밖으로 나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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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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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풍속사 1, 2, 3/강명관 지음/288∼432쪽·1만4000∼2만1000원·푸른역사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가운데 생계를 위해 자리를 짜는 가난한 양반의 실상을 그린 ‘자리 짜기’(왼쪽), 기와 이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행동과 표정을 담은 ‘기와 이기’. 그림 제공 푸른역사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가운데 생계를 위해 자리를 짜는 가난한 양반의 실상을 그린 ‘자리 짜기’(왼쪽), 기와 이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행동과 표정을 담은 ‘기와 이기’. 그림 제공 푸른역사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가 2001년 펴낸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 나오다’는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를 토대로 조선후기 생활상을 풀어쓴 책이다. 책에서 그는 ‘혜원전신첩’에 실린 그림 30점을 ‘풍속’으로 읽었다. 소복을 입은 양반댁 과부가 개의 짝짓기를 감상하면서 배시시 웃고 있는 그림의 경우 화면 속 모습에 그치지 않고 부녀자가 개가를 하면 지탄받았던 조선시대 실상까지 파헤치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 그림을 전체 이야기의 실마리로 삼은 것이다.

그는 단원 김홍도와 다른 풍속화가로 이야기를 넓혀 세 권의 책으로 펴냈다. ‘조선 사람들, 단원의 그림이 되다’라는 부제가 붙은 1권에선 ‘단원풍속도첩’에 실린 25점의 그림을 다뤘다. 저자는 인물의 표정이나 동작, 사물의 배치 등 작은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다. 자주 봐서 익숙한 그림인데도 그의 설명을 따라 가다 보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

기와를 이는 사람들을 그린 ‘기와 이기’에는 여러 사람이 등장한다. 그림의 오른쪽에는 사방관(망건 위에 쓰는 네모반듯한 관)을 쓴 양반이 막대기를 짚고 기와 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이렇게 감시인이 있을 정도라면 이 집은 상것들이 사는 집이 아닌 고급한 용도로 쓰일 집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기둥 옆의 사내는 먹통을 매단 줄을 늘어뜨리고 기둥이 비뚤어지지 않도록 줄과 기둥을 견줘보고 있다. 이 사내의 오른쪽 눈을 감은 상태로 그렸을 만큼 단원의 표현은 섬세하다.

‘자리 짜기’는 가난한 양반의 실상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그림에서 자리를 짜는 남자는 사방관을 쓰고 있다. 양반이라는 얘기다. 양반이 웬일로 노동을 하고 있는 걸까. 저자는 “조선 후기로 오면서 경제적 능력을 갖추지 못한 양반이 속출했다”고 설명한다. 상속제도가 장자에게 재산을 몰아주는 장자우대 불균등 상속제로 바뀌면서 재산을 물려받지 못한 아들들은 자연히 궁핍해졌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양반은 노동을 천하게 여겨 일을 하지 않았지만 자리 짜기 같은 일을 하는 양반도 있었음을 그림은 잘 말해주고 있다. 생각이 트인 양반들은 자리 짜기를 천한 일로 생각하지 않았고, 자리를 짜서 부모를 봉양했다는 글도 양반들의 문집에 종종 나타난다.

‘담배 써는 가게’라는 작품을 보면서 풀어놓는 이야기도 구수하다. 이 그림에선 왼쪽 아래의 책 읽는 남자가 눈길을 끈다. 저자의 설명은 이렇다. “조선 후기 서울의 담배가게는 약국과 함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었다. 마치 서양의 카페 같다고나 할까. 여기서 고담(古談)을 하기도 하고 소설책을 읽기도 했다.”

그림에서 시작한 담배 이야기는 담배가 유익한지 해로운지를 놓고 설전을 벌였던 사람들 이야기로 넘어간다. 정조와 정약용은 흡연 유익론자였다. 정약용은 ‘담배’라는 시에서 담배야말로 귀양살이를 하는 사람에게는 차나 술보다 더 좋은 것이라고 예찬했다. 반면 송시열과 이익은 혐연론자였다. 이익은 ‘귀한 사람, 천한 사람, 남자, 여자, 늙거나 젊거나 가리지 않고 하루 종일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니 담배의 해로움은 술보다도 더 심하다’고 비판했다.

어살을 설치하고 고기 잡는 풍경을 그린 ‘어살’을 놓고 저자는 어살을 둘러싼 계층 간 갈등을 이야기한다. 어살은 한 번에 잡히는 생선으로 무명 500필 정도의 수입을 거둘 수 있을 정도로 짭짤한 수익원이었다. 그렇다 보니 어살의 개인적 독점을 금한 법령을 무시하고 소수 특권층이 어살을 다퉈 차지하는 문제가 생겼다. 성종은 ‘어살은 가난한 백성에게 주는 것’이라는 원칙을 지켰지만 연산군은 총애하는 후궁들에게 어살을 나눠줬다.

‘조선 사람들, 풍속으로 남다’라는 부제가 붙은 2권은 단원, 혜원 이외의 풍속화를 다뤘다. 김준근의 ‘엿 파는 아이’에 대한 설명이 재미있다. 두 소년이 엿목판을 메고 있는데 왼쪽 소년은 떼어서 파는 판엿(널찍한 형태의 덩이 엿)을, 오른쪽 소년은 긴 가래엿을 들고 있다. 판엿을 든 소년은 손에 가위를 쥐고 있다. 저자는 “이 그림을 보고 오래된 의문을 풀었다”고 말한다. 엿장수의 가위가 언제부터 있었는지 늘 궁금했는데 이 그림을 보고 적어도 19세기 말에는 있었음을 확인하게 됐다는 것이다.

3권은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 나오다’의 개정판이다. 강 교수는 풍속화를 ‘그림’으로서가 아니라 ‘풍속’의 시각으로 해석하는 작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회화사 방면의 연구는 풍속화의 미학적 성취에만 주목하고 그림이 담고 있는 정보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풍속화는 이미 사라진 사회와 인간의 삶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달리 볼 소지가 적지 않다. 즉, 사라진 한국 사회, 혹은 한국인의 과거가 담겨 있으므로 우리는 그 과거에 주목할 수 있는 것이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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