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서비스 인테리어’개념 도입 이돈태 英탠저린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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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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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디자인이란… 감성에 논리를 입혀 설득하는 것

《영국항공(브리티시에어웨이)의 비즈니스석 디자인을 맡아 세계 항공업계에 ‘서비스 인테리어’라는 개념을 도입하게 만든 전설적인 인물. 영국의 대표적인 디자인 회사 탠저린의 인턴사원으로 출발해 공동대표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디자인 고문이자 모교인 홍익대 교수. 이돈태 탠저린 공동 대표(42·사진)의 이름 앞에는 이렇듯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다. 런던과 서울을 오가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를 만났다. 최근 이 대표는 우리들병원과 함께 앞으로 몸을 기댈 수 있는 가슴받이가 있는 신개념 의자를 디자인해 시장에 선보였다. “의자 디자인은 디자이너라면 한번쯤 도전하고픈 주제지요. 처음 의뢰받았을 때 의학용품 같은 느낌이 강했던 의자에 가죽 소재 등을 활용해 그 자체가 하나의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손색없도록 디자인했습니다. 지금은 시장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 고객의 숨은 요구까지 읽는 디자인


디자인회사 탠저린의 이돈태 공동대표는 “좋은 디자인은 단순히 보기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제품에 고객의 숨은 요구와 기업의 철학까지 반영하는 확장된 개념의 디자인”이라고 정의했다. 이훈구 기자
디자인회사 탠저린의 이돈태 공동대표는 “좋은 디자인은 단순히 보기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제품에 고객의 숨은 요구와 기업의 철학까지 반영하는 확장된 개념의 디자인”이라고 정의했다. 이훈구 기자
그는 한 달에 일주일 정도만 런던 본사에서 보내고 나머지 시간에는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지역에서 주로 활동한다고 했다. 탠저린에서 아시아 지역 고객을 상대하는 일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샤프나 파나소닉, 니콘 같은 일본의 대표적 전자업체들이 그의 주요 고객이다. “서비스업 위주의 유럽과 달리 아시아·태평양 시장은 제조업 기반이 강하기 때문에 디자인 회사가 할 일이 많습니다. 요즘 이 지역의 디자인 의뢰가 많은데, 통상 신제품 출시 1, 2년 전에 디자인 개발이 시작되는 걸 감안하면 앞으로 아·태지역의 제조업 경기 전망이 밝은 셈입니다.”

이 대표가 생각하는 디자인은 제품 모양을 고안하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소비자가 예상치 못한 니즈(needs)와 시장의 요구를 상품에 반영하고 기업의 철학까지 담아내는 ‘디자인 매니지먼트’라는 확장된 개념의 디자인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본다.

“아이폰을 만든 애플을 보세요. 소비자의 욕구를 읽은 디자이너의 상상을 엔지니어가 현실로 구현해 큰 성공을 거둔 사례인데요. 이 회사의 수석 부사장 조너선 와이브도 사실 우리 회사에 있다가 애플로 옮긴 사람입니다.”

영국 디자인 회사의 공동대표에 국내 대형 건설회사의 고문, 모교에선 후배를 가르치는 교수이지만 그는 여전히 도전을 꿈꾼다. “고객이 우리를 찾으면 일을 맡는 수동적 과정에서 벗어나서 열악한 환경에서 우리를 필요로 하는 기업을 찾아 함께 하고 싶은 일이 많습니다. 나이를 더 먹고 게을러지기 전에 계속 도전해야죠.” 탠저린은 최근 대전 대덕특구의 벤처기업과 정보기술(IT)업체 제품의 디자인 개선을 지원키로 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미리 확정 보수를 받는 방식이 아니라 매출에 따라 이익을 함께 나누는 ‘로열티’ 방식으로 계약을 했다. 우리들병원과 함께 만든 의자 역시 이 방식으로 이익을 나누기로 했다.

○ 강남 거리, 중국 시장보다 영감 못줘

이돈태 대표가 디자인한 브리티시에어웨이(영국항공)의 2007년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 디자인과 소재 변화를 통해 승객을 위한 공간을 기존보다 25% 넓혔다(위).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아파트 래미안의 게이트. 한강의 물결과 절제된 외관을 융합했다. 사진 제공 탠저린
이돈태 대표가 디자인한 브리티시에어웨이(영국항공)의 2007년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 디자인과 소재 변화를 통해 승객을 위한 공간을 기존보다 25% 넓혔다(위).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아파트 래미안의 게이트. 한강의 물결과 절제된 외관을 융합했다. 사진 제공 탠저린
최고의 산업디자이너가 말하는 디자이너의 자질은 무엇일까? 그림을 그리는 능력 못지않게 글을 잘 쓰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한 번 결정하면 수백만 개식 제품을 찍어내야 하는 산업 디자인은 예술작품을 만드는 작업과는 분명 다릅니다. 디자이너의 감성만 아니라 이성을 조화시키는 것이 중요하죠.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 논리를 만들어 타인과 교감하는 능력이 디자이너에게는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래서 글을 잘 다뤄야 한다는 거죠.”

그는 동료나 제자들에게 틈이 날 대마다 주변 사람들의 행태와 문화, 삶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대표 역시 틈만 나면 홍익대 인근이나 부산 등지를 들러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디자인의 영감을 얻는다고 했다. “홍익대 앞은 젊음의 기운을, 부산은 일본 문화와의 교류를 확인할 수 있죠. 언젠가는 중국의 재래시장에서 사람들 모습을 카메라로 담다가 큰 곤욕을 치른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유행의 첨단을 달린다는 서울 강남은 막상 가보면 상업은 있지만 문화는 빈곤해서 찾는 일이 뜸합니다.”

얼마 전 이탈리아 밀라노의 가구박람회에 다녀왔다는 그는 최근 디자인의 흐름을 이렇게 정리했다. “그린 디자인, 에코 디자인에 대한 평가가 냉정해졌습니다. 정말 그린 에너지를 쓰는지, 효율성이 높은지 깐깐히 따져보게 된 거죠. 경기 회복과 함께 블랙과 화이트 위주였던 가구의 색상도 밝아지고 있습니다. 고객과의 교감을 중시하는 한편 이종(異種)산업 사이의 협력과 융합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습니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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