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참을 수 없는 ‘글쓰기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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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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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짜리 소설 펴낸 조용배씨
“직장 은퇴 뒤 7년 걸려 완성”

금융권에서 일하다 퇴직 후 70세의 나이에 총 5권에 이르는 장편소설 ‘어머니의 그림자’를 펴낸 조용배 씨. 이 소설에서 6·25전쟁의 비극을 한 가족의 이야기로 풀어간 그는 “전쟁의 참혹함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금융권에서 일하다 퇴직 후 70세의 나이에 총 5권에 이르는 장편소설 ‘어머니의 그림자’를 펴낸 조용배 씨. 이 소설에서 6·25전쟁의 비극을 한 가족의 이야기로 풀어간 그는 “전쟁의 참혹함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우리 세대는 자기 하고 싶은 걸 해보기보단 먹고살기 바빴어요. 젊었을 때는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글을 쓰고 싶어도 자제를 해야 했지요. 그렇게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것을 퇴직 후에야 비로소 하고 있습니다.”

신춘문예 응시자 가운데 일흔 넘은 고령자를 발견하는 것은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다. 고령화사회로 진입하면서 은퇴 후 체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을 발표하는 실버 문학가도 함께 늘고 있다. 이런 소설들은 저자의 개인사에 큰 흔적을 남긴 6·25전쟁, 4·19혁명, 경제성장기 등 격변기의 우리 사회상을 함께 다루고 있다. 최근 ‘어머니의 그림자’라는 장편소설(신서원·총 5권)을 펴낸 조용배 씨(70)도 이런 경우다.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사에서 그를 만났다.

고려대 상경대를 졸업한 뒤 금융권에서 30여 년간 일하다 10년 전 퇴직한 그는 원고지 1만5000여 장에 달하는 긴 소설을 7년에 걸쳐 탈고했다. 문학 수업을 받아본 적도, 소설을 써본 적도 없던 그가 은퇴 후 오랜 시간을 들여 소설을 쓴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는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감정의 격랑”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아마 지금 젊은 사람들은 상상이 안 될 겁니다. 전쟁이나 가난이란 것을 전혀 모르니까요. 전쟁 당시 아버지께서 제 눈앞에서 공산주의자에게 사살당하셨고 가장 따르던 큰형님께서 전사하셨습니다. 책을 쓰면서 전쟁으로 부모형제를 잃은 한도 풀고 전쟁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어요.”

6·25 전란의 잔혹과 비극, 전후의 고통을 한 가족사를 중심으로 상세히 풀어간 이 소설은 상당 부분 자전적 경험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는 “형식도 장르도 중요하지 않았다. 일흔이 넘은 노인이 세상에 무슨 미련이 있거나 겁날 게 있겠느냐”며 “그저 쓰고 싶은 것을 마음껏 썼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팔리느냐 팔리지 않느냐는 것도 부차적인 문제였다. 그는 “젊은 사람들이 궁금할 때 언제든 이런 기록을 접할 수 있도록 전국 200여 대학 도서관에 자비로 책을 한 질씩 보냈다”고 말했다. 조 씨는 차기작으로 청춘 소설도 한 편 쓰고 있다고 했다. 은퇴 뒤 갖게 된 새로운 삶인 만큼, 쫓기는 마음 없이 쉬엄쉬엄 한다.

“가끔 좀 더 일찍 글을 쓸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물론 그럴 수가 없는 세대였지만요. 아무리 힘들어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만큼 즐거운 건 없습니다. 글을 쓸 때마다, 이렇게 몰두할 곳이 있다는 것이 참 좋습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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