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11가지 낯선 세계를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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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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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캣캣캣/태기수 외 지음/348쪽·1만2000원·현대문학

도시의 밤거리를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는 친근하면서도 낯선 동물이다. 쓰레기봉지를 앞발로 뒤적이다 인기척에 쏜살같이 달아나는 모습은 유머러스하다. 하지만 늦은 밤 고양이의 울음소리나 몸을 낮춘 채 형광 눈빛을 번득이는 모습은 음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고양이는 멜로물부터 공포물에 이르기까지 갖은 장르에서 매번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해 등장했다.

이 소설집은 젊은 소설가들이 고양이를 테마로 쓴 단편소설을 모은 것이다. 태기수 박형서 김이은 염승숙 명지현 씨 등 월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작가 11명의 작품이 수록됐다. 작가들이 고양이를 영감으로 떠올린 개성 넘치는 작품들을 감상해볼 수 있다. 고양이란 동물이 가진 이미지만큼 작가들이 형상화한 서사도 다채롭다.

박형서 씨의 ‘갈라파고스’는 신(新)진화의 법칙(혹은 퇴화의 법칙)을 고양이를 매개로 풀어낸 소설이다. 우연히 길고양이를 데려온 청년은 그에게 ‘성범수’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친구처럼 아끼며 키운다. 하지만 이 고양이는 점차 청년의 친구, 여자, 신분까지 빼앗아가며 진화해간다. 분노한 청년은 성범수를 인천대교 밑으로 던져버리지만 고양이 ‘성범수’는 그렇게 호락호락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을 뛰어넘어 진화한 고양이와 도태한 한 남자는 뜻밖의 상황에서 조우하게 된다.

김이은 씨의 ‘고양이 소설엔 고양이가 없다’는 메타 텍스트적인 작품. 소설가인 주인공은 고양이에 관한 소설을 청탁받은 것을 기억해내고 부랴부랴 작품 구상에 들어간다. 그러다 ‘죽음의 냄새를 맡는 고양이’에 대한 제보를 받고 취재를 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주인공은 길을 떠나며 이 소재에 대한 환상적인 이야기의 얼개를 구상해보지만 제보 내용을 취재하는 데는 실패하고 만다. 작가는 이 실패담 자체를 결국 소설로 쓴 셈이다.

이 밖에도 염승숙 씨의 실연 당한 남자의 환상을 중심으로 고양이 이야기를 풀어낸 ‘자작나무를 흔드는 고양이’, SF적인 상상력으로 인간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명지현 씨의 ‘흙, 일곱 마리’ 등이 수록됐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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