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매력 능력 권력… 카리스마는 神의 선물

  • Array
  • 입력 2010년 2월 20일 03시 00분


코멘트

사도 바울서 20세기 베버가 사용하기까지
2000년에 걸친 단어 카리스마의 역사 추적

◇카리스마의 역사/존 포츠 지음·이현주 옮김/544쪽·2만5000원·더숲

‘카리스마’의 사전적 정의는 두 가지다. 첫 번째, 예언이나 기적을 나타낼 수 있는 초능력이나 절대적인 권위. 두 번째, 대중을 심복시켜 따르게 하는 능력이나 자질. 사회에서 통용되는 카리스마의 뜻은 보통 두 번째다. 그렇다면 첫 번째 의미는 언제 생겼을까. 이 책은 사도 바울이 기원후 50∼62년 ‘카리스마’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을 때부터 막스 베버가 20세기 초 이 단어를 새롭게 사용하기까지 약 2000년에 걸친 카리스마의 역사를 추적해 이 같은 궁금증에 답한다.

“아테네는 그에게 초자연적인 카리스마를 부여했다. 그러자 그가 다가오면 모든 사람들은 탄복하며 그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호메로스 ‘오디세이아’ 중에서)

카리스마의 어원은 그리스어 카리스다. 카리스의 뜻은 영어의 ‘grace’와 비슷하다. 아름다움, 매력, 특히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결속시키는 호의를 뜻한다. 저자는 “은혜를 베푸는 행위와 그에 대한 감사라는 상호존중의 체계가 이 단어 속에 숨어 있다”고 설명한다. 후원자(patron)와 의뢰인(client) 사이 상호존중의 체계는 고대 헬레니즘 시대의 관습이자 사회체계였다.

사도 바울은 이방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카리스’에 독창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바울은 ‘카리스’에 행위의 결과를 나타내는 그리스어 접미사 ‘마(ma)’를 붙인 단어 ‘카리스마’를 이 편지에서 16차례 사용한다. 신의 카리스(은총)의 직접적인 결과물, 즉 신의 은사를 뜻하는 단어다. 이방인들에게 익숙한 상호주의를 바탕으로 교리를 설명하기 위해 ‘카리스’를 끌어들인 것이다. 바울은 은사를 통해 공동체에 봉사하고 결속하라고 주문했다. 저자는 “사도 바울은 자신의 서신을 읽는 사람들의 사회적 환경에 맞게 카리스라는 종교적 개념을 재단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세로 접어들면서 즉흥적 영감에 의한 설교보다는 성서가, 예언자보다는 주교가 교회의 중심이 됐다. 영적 능력이라는 의미가 내포된 카리스마라는 단어도 잊혀져 갔다.

이 단어를 세상에 새롭게 끌어낸 것이 바로 막스 베버다. 베버는 ‘경제와 사회’에서 카리스마를 권력 혹은 지배의 형태 중 하나라고 밝혔다. 여기서 뛰어난 지도자에 대한 추종자들의 개인적 신뢰에 바탕을 둔 ‘카리스마적 지배’라는 개념이 생겼다. 합법적 지배와는 상반되는 개념이다. 베버는 초대 교회 당시 사도와 예언자들이 합법적인 권력 없이도 신의 은총으로 받은 영적인 능력을 통해 공동체를 통치했다는 데 착안했다. 이후 카리스마는 히틀러나 무솔리니, 존 F 케네디 등 강력한 권위를 발휘했던 독재자나 뛰어난 매력을 지닌 정치인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제 카리스마라는 단어는 자기계발서에 등장하며 ‘계발해서 성장시킬 수 있는 능력’으로 취급받는다. 베버가 카리스마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만 하더라도 종교적 색채가 남아 있었지만 현대로 접어들며 이 같은 색채는 대부분 제거됐다. 합리성과 서민적 면모가 정치인의 중요한 자산이 되면서 ‘카리스마적 지배자’는 현대 정치에서 찾기 힘든 것이 됐다.

그러나 저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당선 과정에서 여전히 베버가 제시한 카리스마의 개념이 유효하다는 점을 확인한다. 존 F 케네디를 언급하고, 열정적인 연설과 ‘희망’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것이 모두 오바마의 ‘카리스마’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에 대한 열광적 지지는 종교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왜 몇몇 사람들은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을 매료시키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가. 저자는 “사람들이 이에 대해 ‘카리스마’라고 답하는 것은 그 안에 내포된 비합리성과 신비로움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위신, 유명인, 권위 등의 단어와 카리스마는 다르다. 카리스마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