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 타고 전투기 사진 찍는 공군 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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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8일 09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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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 사진사 편보현 중사
전투기 사진사 편보현 중사

“한라산 상공에서 비행하던 중 갑자기 비행복(G-suit)에 바람이 들어와 아찔했었죠.”


편보현 중사(34)는 지난해 5월 한라산 상공에서 아찔한 경험을 겪었다. F-15K 전투기를 타고 순조롭게 비행하던 중이었다. 어지간해선 계기판과 스위치를 건드리지 않는 편 중사다. 그 때 갑자기 후방석 조종석 옆에 둔 카메라에 G-suit 스위치가 눌려 공기주머니가 팽창하기 시작했다. 전투기가 상공에 떠있는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편 중사는 전방석 조종사가 직접 나서 도와줄 수 없음을 깨닫고 ‘이대로 잘못되면 어떡하나’하는 무서운 생각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침착하게 조종사의 도움을 받아 곧 작동을 멈추고 정상적인 비행을 할 수가 있었다. 조종사 출신이 아닌 편 중사에게는 아찔한 경험이었다.

(G-suit는 조종사들이 하중(G)을 견뎌내기 위해 입는 옷으로 공기 주머니로 압축공기가 주입돼 피가 위에서 아래로 몰리는 현상을 막아준다.)

공군본부 정훈공보실 공보과 소속인 편보현 중사의 탑승 기종 이력은 웬만한 조종사들 못지않다. 국내 최고 전투기로 뽑히는 F-15․F-16․T-50 등의 전투기는 물론 HH-60 헬기․ C-130 수송기 등 탑승기종은 10여종에 이른다.

다들 궁금할 것이다. 조종사가 아닌 그가 어떤 이유로 전투기에 탑승할 수 있었을까? 답은 그의 카메라 안에 있다.

편 중사의 카메라에는 끝없이 펼쳐진 상공에서 비행 중인 전투기 사진들이 가득 찍혀 있다. 석양을 배경으로 위풍당당하게 비행하는 F-15, 공대공 미사일을 발사하는 A-50, 조종석에 앉아 비행 중인 조종사의 모습 등 공중에서 펼쳐지는 여러 장면들이 찍혀있다.


편 중사는 불모지였던 군내 항공촬영분야를 개척한 항공촬영 전문가다. 1997년부터 비행단 사진반으로 근무하던 편 중사는 한국 공군이 대외 홍보로 사용한 대표 사진들 중 일부가 일본 사진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 편 중사는 ‘우리는 왜 못하나’라는 오기가 발동해 항공촬영에 대한 ‘뜨거운’ 계기를 갖게 됐다. 그의 불타는 열정은 때마침 상부와 타이밍이 맞았고, 항공기 탑승을 위한 항공우주생리교육훈련을 순조롭게 마쳤다.

지난 2005년, 편 중사는 A-50전투기를 타고 처녀비행에 나섰다. 그의 첫 임무는 공대공 미사일 시험발사 순간을 찍는 것이었다.

“사실 공대공 미사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요. 물론 비행기도 처음 탔기 때문에 공중에서의 제 신체 상태도 알 수 없었죠. 게다가 시험 발사는 딱 한 번뿐이었어요. 그래서 외국에서 촬영된 공대공 미사일 영상을 틀어놓고 사무실에서 ‘하나, 둘, 셋’을 세면서 셔터 누르는 연습을 했어요.”

편 중사는 영상을 반복재생하면서 수 백 번 넘게 셔터를 눌렀다. 그만큼 힘들게 얻은 비행 기회였다.

“첫 임무에서 실패하면 ‘나뿐만이 아닌 다른 후배들에게도 기회가 없겠지’라는 부담감이 크게 다가왔어요.”

그는 ‘실패하면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전투기에 올라탔다. 결과는 ‘간신히’ 성공이었다. 조종사의 미사일 카운트다운 소리가 다른 교신 소리에 묻혀 셔터 누르는 타이밍을 놓쳤던 것이다. 당시 DSLR카메라로 촬영한 편 중사는 찍힌 사진이 나타나는 5초 동안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리 속으로 스쳤다고 한다. 정말 다행히 딱 ‘1장’ 건졌다.

제주도 상공에서 촬영한 F-15K 전투기
제주도 상공에서 촬영한 F-15K 전투기

강한 중력을 받으며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전투기 속에서 사진촬영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전투기 조종석에 앉으면 좌석에 온몸이 결박된 상태에서 몸을 돌려 촬영하게 됩니다. 프레임 안에 원하는 피사체를 넣는다는 것이 어려운 작업이죠. 게다가 굉장히 빠른 시간 내에 모든 일이 끝나버려서 그 ‘순간’이 매우 중요합니다.”


생각만큼 자주 오지 않는 비행이라 편 중사는 비행을 나가면 ‘쉴 새 없이’ 셔터를 누른다. 하지만 상공에서의 여건은 만만치 않다.
“항공촬영은 진동과 각도, 빛의 제한을 많이 받습니다. 중력이 4G이상이면 셔터가 작동하지 않고 오전 10부터 오후 2시 사이에는 역광 관계로 촬영하지 않습니다.”
편 중사가 비행을 나가 찍어오는 사진은 3,000여 컷 정도. 그 중 건질만한 사진은 4~5정도다.
“비록 건질 만한 사진은 몇 장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머지 사진을 지우거나 삭제하지는 않아요. 촬영 당시 상황과 결과물인 사진 등을 기록해 보관해두는 것만으로도 후배들에게 큰 교육이 되기 때문이죠.”
그동안 편 중사는 항공촬영을 정식 매뉴얼 없이 맨몸으로 부딪쳐 배웠다. 요즘 그는 그동안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매뉴얼을 만들고 있다. 후배들을 위한 배려다. 군내 항공촬영의 개척자인 만큼 아쉬운 점도 있다.

“(비행 기회가)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전투대대다 보니 스케쥴이 빡빡하고 촬영 인가를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앞으로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지만 후배들에게도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공군의 이미지를 담당하고 있는 편 중사에게는 당연히 ‘무기’보다는 ‘카메라’가 제격이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눌러지는 셔터는 전투기의 ‘포스(force)’를 순간적인 찰나에 담아내는 결정적인 임무를 수행한다.

“항공촬영을 하다보면 조종사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조종사의 땀과 노력, 열정 그리고 고난도 임무를 수행하면서 감내해야 하는 고통을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게 곧 ‘공군력의 원천’이니까요.”


정주희 동아닷컴 기자 zooey@donga.com



▲[동영상] 전투기 사진사 편보현 중사가 직접 촬영한 사진·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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