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가슴에 꽂힌 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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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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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화양연화’ 유안진→‘에비타’ 등
시인세계, 시인 16명의 영화소재 시 특집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화양연화’(2000년),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영화 제목과 같은 이름의 시가 있다는 것이다. 이병률, 권혁웅 시인이 각각의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한 시들이다. 이병률 시인은 ‘화양연화’에 대해 “나에게 이 영화는 그림이며 음악이며 사진이며 여행이었다. 이 영화는 그 모든 걸 거느리며 여전히 아직도 내 깊숙한 힘줄에 관여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시인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영화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 최근 나온 계간 ‘시인세계’ 봄호가 ‘내 시 속에 들어온 영화’를 기획특집으로 꾸몄다. 유안진, 마광수, 김영승, 박주택, 정끝별, 이병률 씨 등 시인 16명의 글을 수록했다.

아르헨티나 에바 페론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에비타’를 바탕으로 ‘탱고 탱고, 탱고를 위하여’를 쓴 유안진 시인은 “영화는 때로 직접체험 이상이다”라고 말한다. 정끝별 시인은 프랑스 영화 ‘안개 속의 풍경’의 한 장면을 같은 이름의 시 속으로 끌어들였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아버지를 무작정 찾아 나선 어린 두 남매의 여정을 그린 이 영화에서 시인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린다. 어린 자식들을 이끌고 온몸으로 자욱한 안개 속을 헤쳐 나갔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시 속에 애절하게 묻어난다.

“깜깜한 식솔들을 이 가지 저 가지에 달고/아버진 이 안개 속을 어떻게 건너셨어요?/닿는 것들마다 처벅처벅 삭아내리는/이 어리굴젓 속을 어떻게 견디셨어요?”

김영승 시인은 특정한 영화가 아니라 어린 시절 즐겨 봤던 검객 영화를 떠올리며 시를 썼다. 검객 영화에 등장하는 호연한 무림의 고수에게 자신을 투영한 ‘반성 173’. 가난했던 젊은 시절의 오욕과 근심을 “함부로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 (영화 속) 천하제일의 검객”에 빗대는 것으로 달랜다.

“어릴 때 본 검객 영화를 생각한다/악당들이 미리 칼을 뽑고 삥 둘러싸도/주인공은 태연하다…악당들의 쫄개들이 하도 찝쩍대면/할 수 없이 젓가락을 집어던지는/그리하여 악당들의 눈에 가서 팍팍팍 박히게 하는…할 수 없이 술을 마시다가/할 수 없이 칼을 뽑는/정말 할 수 없는 그 주인공을 생각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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