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보내고 사랑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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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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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선정 ‘2009 올해의 인물’ 故김수환 추기경

“내 나이 여든 다섯.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자연히 과거를 되돌아보게 된다…나는 정말 많은 시련과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에 비해 여러 의미로 행복한 인생을 살아왔다.”

아침 최저기온 영하 6도, 찬바람에 진눈깨비마저 흩뿌렸다. 2009년 2월 20일 오전 장례미사가 끝나갈 무렵 그의 육성을 담은 동영상이 상영되자 서울 명동성당에 모인 1만여 명은 눈시울을 붉혔다. 잠시 후 33번의 종소리를 뒤로한 채 운구차는 명동성당을 빠져나갔다.

오후 1시 35분 경기 용인시 천주교 성직자묘역.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PRO VOBIS ET PRO MULTIS)’란 문구가 새겨진 묘비 뒤에서 그는 묵주 하나와 함께 흙 속으로 돌아갔다. 거기 모인 2000여 명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요한복음 11장 25절)를 불렀고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란 현수막으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날 날씨는 차가웠지만 사람들의 가슴은 따뜻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본보의 ‘2009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올해 2월 16일 선종한 김 추기경. 그는 종교 신분 계층 이념을 초월해 늘 낮은 곳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의 빛과 소금이 되었고 스스로 바보라 부를 만큼 겸손한 삶을 살았다. 1970, 80년대 정치적 격변기엔 민주와 정의의 가치를 지켜내는 데 헌신했다.

세상을 떠난 뒤 그는 ‘위대한 부활’을 보여주었다. 선종 이후 명동성당 빈소에는 공식 조문기간인 19일 밤 12시까지 38만7420명이 추모했다. 전국적으로는 100만여 명에 달했다. 이 같은 추모 열기는 고인이 평생 실천했던 사랑과 자비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다. 또한 반목과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이기도 했다.

당시 추모객들은 “추기경을 생각하면 누군가에게 사랑을 베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 입을 모았다.

김 추기경의 각막 기증 소식에 힘입어 2008년 7만4000여 명이었던 각막 기증 희망자는 올해엔 12월 초 이미 17만8000명을 넘어섰다. 사랑을 보여주고 떠난 김 추기경, 그는 여전히 세상의 빛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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