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언어도 문자도 ‘음악’이 없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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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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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얼거림에서 언어로 발전
가사 전승위해 문자 필요

문명 발달에 기여한 음악
인류 진화과정 맞춰 설명

슬로바키아의 한 병원에서 태어난 지 하루나 이틀밖에 안 된 아기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구별하는 능력을 지닌 인류에게 음악은 진화의 촉진제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슬로바키아의 한 병원에서 태어난 지 하루나 이틀밖에 안 된 아기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구별하는 능력을 지닌 인류에게 음악은 진화의 촉진제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호모 무지쿠스/대니얼 J 레비틴 지음·장호연 옮김/396쪽·1만8500원·마티

음악이 사회를 만들고 문명을 형성해 간 발자취를 우애 기쁨 위로 지식 종교 사랑 등 6가지 주제를 가진 노래로 설명하는 책이다. 전작 ‘뇌의 왈츠’를 통해 ‘음악적 뇌’라는 독창적인 콘셉트를 내세운 저자는 “음악이 인간 본성과 문명 발달에 주도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음악은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인 언어의 발전을 이끌었고, 문명 속에서 크고 작은 협력을 용이하도록 했으며, 정보를 후세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 부족과 집단의 유대감 형성에 기여

수천 년 동안 문명의 영향을 받지 않고 살고 있는 브라질 아마존의 메크라노티 부족의 남자들은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함께 노래를 부른다. 인류학자 데니스 워너가 ‘남성다운 포효’라 부른 이 관습은 다른 부족으로부터 새벽에 공격받지 않기 위해 자신들이 깨어있음을 알리는 신호이자 일치된 음성으로 노래함으로써 집단의 일체감을 높이는 의식이다. 함께 어울려 노래를 하면 사람들 사이에 신뢰감을 형성케 하는 옥시토신이 분비된다.

유대감을 높이는 이런 ‘우애의 노래’는 사회 내부의 긴장을 누그러뜨림으로써 인간이 다른 영장류의 사회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서는 사회를 형성할 수 있도록 했다. 노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치된 동작을 유도하는 촉매로도 작용했다. 노동의 효율과 협력을 높여 문명의 기초를 닦는 데 기여했다. 사회적 소수자들의 유대감 형성이나 저항운동의 구심점에 노래가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 지식 전수의 주요 통로

리듬과 패턴이 있는 음악은 인류 생존에 필요한 지식을 나누고 후대에 전달하는 기억의 도구로 사용됐다. 숫자 체계가 있는 문화권에서는 지금도 아이들이 운율에 맞춰 셈하기 노래를 배운다. 노래 ‘열 꼬마 인디언’으로 숫자를 배우고, 리듬이 있는 구구단으로 곱셈을 외우는 식이다.

생후 7개월 된 아기도 한 번 들은 음악을 2주가량 기억하고, 모차르트의 특정한 가락을 자기가 듣지 않은 가락과 구별할 줄 안다. 이는 음악을 지각하고 기억하는 능력이 진화와 연관된 선천적인 능력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노래가 가진 ‘리듬의 추진력’이 뇌에게 기억나는 단어가 있을 때 뛰어들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물리적 실체 없이 구비 전승되는 노래와 서사시가 문자 못지않게 꾸준히 전해 내려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저자는 ‘지식의 노래’로서의 음악이 인류 문명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 기쁨 위로 종교 사랑의 노래

신경과학자들은 최근에 음악 연주를 통해 기분을 좋게 하는 도파민의 수치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도파민 수치의 상승은 면역계를 증강시킨다. ‘기쁨의 노래’는 스트레스를 줄여 인간들이 혹독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왔다. 음악치료가 가능한 것도 이런 특성 때문이다. 알츠하이머병이나 뇌중풍(뇌졸중) 등으로 기억을 잃은 사람들도 젊었을 때 즐겼던 음악을 들려주면 가사를 기억해 따라 부르곤 한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위로의 음악’은 자장가다. 아기는 자장가를 통해 혼자가 아님을 느낀다. 저자는 인류는 위로의 음악을 통해 큰 세계의 구성원임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안정감을 가지게 됐다고 말한다. ‘종교의 노래’는 인간이 가졌던 낮은 의식 수준을 믿음의 체계로 발전시키는 역할을 해 결과적으로 희망과 신념의 감정을 체계화하고 사회화하도록 도왔고, ‘사랑의 노래’는 사랑의 감정과 어우러져 사람들이 아이들을 키우는 사회구조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현 인류가 ‘호모 무지쿠스(음악적 인간)’의 특성을 갖게 된 것은 음악의 본질에 ‘좋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진화 과정에서 음악의 이런 다양한 이득을 아는 개체가 계속 살아남음으로써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원제는 ‘The world in six songs’. 책에서 언급된 수백 곡의 노래 일부를 인터넷 사이트(www.sixsongs.net)에서 무료로 들을 수 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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