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경배-야만-욕망 오간 한중일 호랑이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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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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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민담-예술속에 녹아있는
각국 호랑이 공통점과 차이점
학자 24명의 ‘문화코드’읽기

경기 수원시 팔달선원의 벽화에 그려진 담배 피우는 호랑이와 시중드는 토끼(위). 중국 연화에 나오는 화려한 색채가 두드러지는 호랑이(왼쪽). 1901년에 그려진 일본의 호랑이 그림. 메이지유신 이후 호랑이 그림의 특징인 사납고 강압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오른쪽). 사진 제공 생각의나무
경기 수원시 팔달선원의 벽화에 그려진 담배 피우는 호랑이와 시중드는 토끼(위). 중국 연화에 나오는 화려한 색채가 두드러지는 호랑이(왼쪽). 1901년에 그려진 일본의 호랑이 그림. 메이지유신 이후 호랑이 그림의 특징인 사납고 강압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오른쪽). 사진 제공 생각의나무
◇십이지신 호랑이/이어령 엮음/324쪽·1만5000원·생각의나무

일본의 에도시대 화가 이토 자쿠추(伊藤若沖·1716∼1800)가 그린 그림에 나오는 호랑이는 ‘맹호도’라는 제목과 달리 혀를 내민 순박한 모습이다. 조선통신사가 가져온 한국의 민화를 본뜬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나라 때 이경량이 지은 기담소설 ‘인호전(人虎傳)’에는 자기 성질을 다스리지 못하고 호랑이로 변한 선비의 이야기가 나온다. 인내하지 못하고 동굴을 박차고 나간 단군신화의 호랑이와 닮았다.

이처럼 호랑이는 한국, 중국, 일본의 문화적 상징이었다. 세 나라의 학자 24명이 신화, 민담, 예술, 일상 속에 녹아 있는 각국 호랑이의 의미와 공통점, 차이점에 대해 글을 썼다.

세 나라의 호랑이가 서로 연관성이 있다는 점은 이름에서부터 드러난다. 진태하 명지대 국어국문과 명예교수는 “우리말 ‘호랑이’는 한자 ‘호랑(虎狼)’에서 연원했다”고 말했다. 여기에 ‘이’가 붙어 고유어처럼 변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호랑이는 ‘도라’라고 불렸다. 일본에서는 신석기시대에 호랑이가 멸종해 그 후로는 볼 수 없었다. 일본 고대어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지만 일본에서 멸종된 동물이기 때문에 조선의 고어 또는 초나라의 방언 등 외국어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설득력 있다고 하마다 요 데이쿄(帝京)대 일본문화학과 교수는 말한다.

한국과 중국의 민담에서 호랑이는 두려움과 포획의 대상이자 경배의 대상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신의 사자 역할을 하는 신성한 호랑이도 나타나지만 어리석은 호랑이를 꾀로 속이고 위험에서 탈출한다는 식의 지혜 겨루기 이야기도 함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호랑이를 ‘상상의 동물’, 이국적 정서가 넘치는 존재로 진귀하게 여겼다. 그래서 백제나 신라 같은 이국(異國)에서 이를 퇴치하고 무용(武勇)을 선보였다는 호랑이 퇴치담이 많다.

호랑이는 유교, 불교, 도교에서도 서로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이용주 전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는 “유교에서 호랑이는 문명의 대척에 서 있는 존재, 야만의 상징, 문명 내부에 속한 질서 파괴자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질서와 제도를 뜻하는 ‘예(禮)’를 파괴하는 존재였던 셈이다. 탐관오리를 호랑이에 비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도교와 불교에서 호랑이는 인간의 세속적 욕망, 헛된 분노와 탐욕과 욕구를 뜻한다. 호랑이에게 쫓기고 잡아먹히는 구도자의 이야기는 호랑이가 갖는 이런 의미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셈이다. 원효대사를 그린 초상화 중에는 호랑이 세 마리를 마치 수행원처럼 거느리고 있는 그림이 있다. 세속적 욕구를 극복하고 득도한 인물을 표현한 것이다.

세 나라에서는 모두 고대부터 호랑이를 악귀를 쫓고 복을 구하거나 권위를 표현하기 위한 예술의 소재로 사용했다. 한국에서 호랑이에 관한 창작이 가장 활발했던 것은 조선시대. 당시 민화 속 호랑이는 해학 익살 재치를 나타내며 자연스러운 색채를 특징으로 한다.

중국의 경우 명, 청나라로 갈수록 육중한 몸집, 전체적으로 무겁고 후덥지근한 분위기, 붉고 화려한 색채 등 여러 특징이 나타난다. 일본의 호랑이 그림은 한국과 중국에 대한 영향과 조응하며 변해 왔다. 메이지유신 이후 사납고 도전적인 호랑이 그림이 등장했고 이는 조선 등 여러 아시아 지역에 영향을 미쳤다. 당대 정치 분위기가 호랑이 그림에 고스란히 담긴 셈이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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