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기담+사진… 브레이크 없는 욕망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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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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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김탁환, 강영호 지음/288쪽·1만2800원·살림

이 책을 펼치면 가장 먼저 기괴하고 악마적인 이미지를 가진 사진들이 눈에 띈다. 사진작가 강영호 씨가 인간 내면에 잠재한 괴물, 기형성을 끌어내 찍은 자화상들이다. 이 사진에 조응하는 호러 단편들은 소설가 김탁환 씨가 썼다.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 이 책에 수록된 단편의 배경은 홍익대 앞에 있는 ‘상상사진관’이다. 이는 강 씨가 실제로 운영하고 있는 사진관의 이름이며 소설 속 설정처럼 그는 실제로도 사진을 찍으며 춤을 추는 ‘춤추는 사진작가’로 유명하다. 소설은 이처럼 현실과 가상을 교묘하게 배치함으로써 현대인의 삶 속에 잠복하고 있는 공포와 광기를 극대화했다.

‘상대성 인간’은 ‘드라큘라 성’이라는 별명을 가진 홍익대 앞 상상사진관의 설립과 관련된 비밀스러운 일을 다뤘다. 사진작가 강영호는 중세 드라큘라 성과 같은 콘셉트로 사진관 건물을 지으려고 하지만 마땅한 건축가를 찾을 수 없었다. 그때 제이 킬이란 건축가가 나타나 하루 만에 완벽한 설계도를 완성하고 그가 제시하는 까다로운 조건들을 척척 해결해간다. 창백한 피부, 얇은 입술 등 뱀파이어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외모와 말투를 가진 제이 킬의 정체에 의문을 품은 강영호는 그를 미행한다. 제이 킬은 매일 오전 2시 집을 나가 손에 피를 묻힌 채 6시에 돌아오는 것을 반복하고 그사이 홍대 인근에서는 연쇄살인이 일어난다.

‘인간인간인간’은 배와 가슴에 지하철 선로에 뛰어내려 죽은 사람들의 얼굴이 자라나는 지하철 기관사 T의 이야기다. 문제는 죽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앞으로 죽게 될 사람들의 얼굴 역시 흐릿하게 나타난다는 것. 애꿎은 죽음을 막기 위해 형사와 함께 ‘상상사진관’에 들른 그는 사진을 찍어 다음 희생자가 누군지 알아보려고 한다. 뜻밖에도 막 어렴풋이 생겨나고 있는 얼굴의 주인공은 동행한 형사로 드러난다. 형사는 터무니없다며 자신만만해하지만 결국 기묘한 예언대로 죽고 만다. T가 죄책감에 시달리는 가운데 또다시 다음 희생자의 얼굴이 서서히 드러난다.

이 작품들은 공포의 현장이 다름 아닌 서울 곳곳, 많은 사람들이 영문 없이 죽어가고 불안과 초조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는 지금 이곳임을 말해준다. 책에 수록된 7편의 단편과 사진들을 통해 영혼의 어둠과 통제 불능의 욕망, 괴기가 두 예술가에게 불어넣은 영감을 살펴볼 수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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