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774>古之學者는 爲己러니 今之學者는 爲人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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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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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들은 학문을 크게 爲己之學과 爲人之學으로 나누었다. 직역하면 나를 위한 학문과 남을 위한 학문이지만 이기주의와 공리주의의 구별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爲己之學이란 자기를 완성하기 위해 덕성을 修養(수양)하는 학문을 말하고 爲人之學은 남에게 알려지려고 자기를 과시하는 학문을 말한다. 구별은 바로 ‘논어’의 ‘憲問(헌문)’에서 공자가 말한 내용과 그것을 풀이한 程이(정이)와 주자의 설에 근거한다.

단, 옛 주석이나 정약용의 설에 따르면 爲己는 실천해 나가는 일을 가리키고 爲人은 남에게 말만 하는 일을 가리킨다. ‘순자’의 ‘勸學(권학)’에도 ‘군자의 학문은 귀로 들어와 마음에 들러붙고 四體(사체)에 펼쳐져서 動靜(동정·기거동작)에 나타나지만 소인의 학문은 귀로 들어와 입으로 나간다. 입과 귀의 사이는 네 치에 불과하거늘 어떻게 일곱 자의 몸을 아름답게 할 수 있으랴’라고 했다. 爲人之學은 귀로 듣고 입으로 내보내는 口耳之學과 같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통설인 정이와 주자의 설을 따랐다.

서양 중국학자 드베리는 爲己之學을 개인주의의 중국적 형태라고 예찬했다. 하지만 정이는 ‘옛날의 학자들은 자신을 위한 공부를 했기에 종당에는 남을 완성시켜주는 成物(성물)에 이르렀으나, 지금의 학자들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부를 하므로 종당에는 자기를 상실하는 喪己(상기)에 이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爲己之學은 자기의 완성인 成己에서 끝나지 않고 타인의 공동 완성인 成物로 귀결한다. ‘중용’에서도 ‘誠(성)의 의미는 자신만 완성시키는 것[成己]이 아니라 타인까지도 이루어 주는 것[成物]을 뜻한다’고 했다. 현대의 학문도 成己成物을 동시에 추구하는 爲己之學이어야 하리라.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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