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아가야, 다신 오지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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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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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의 상태에 대해 가능태(dynamis)와 현실태(energeia)란 사유를 펼쳤다. 가능태가 어떤 세포로든 발현할 수 있는 줄기세포라면 현실태는 그 줄기세포가 특정 세포로 발현한 상태다. 동랑레퍼토리 극단이 반세기에 걸친 ‘동면’을 깨고 선택한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최인훈 작·이기도 연출)는 가능태와 현실태의 관계마저 뒤집어버리는 권력의 패륜성을 신화적으로 비판한 작품이다. 세계무대에 내보낼 한국연극(현실태)을 다양하게 모색해온 이 극단의 선택이 전래 아기장수 설화를 토대로 한 1970년대 작품(가능태)으로 회귀했다는 점에서도 의미심장하다.

연극은 폭설이 내리는 깊은 밤 산골마을 단칸방에서 임신한 아내(박은빈)가 봄에 농사지을 씨앗을 구하러 읍내로 간 남편(정원중)을 기다리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곡식씨앗을 얻어온 말더듬이 남편은 흉년 도적이 된 소금장수의 목이 관가 기둥 높이 걸려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부부는 도적떼 걱정을 하면서도 새로 태어날 아기 생각에 시름을 놓는다.

봄이 오고 아기가 태어난다. 그때 흉흉한 소문이 돈다. 아기장수를 태울 용마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도탄에 빠진 세상을 구한다는 아기장수는 곧 현실권력을 무너뜨릴 역적의 가능태다.

관가에선 용마를 잡는다며 온 마을 남정네를 동원한다. 아내는 자신의 아기가 아기장수임을 발견하고, 남편은 곡식포대로 아기를 눌러 죽인다. 가능태에 불과한 아기가 현실태인 도적의 운명으로 인해 질식사한 것이다. 권력이 강제한 이 패륜적 자기검열의 절정은 그렇게 세상을 떠나가는 아기장수에게 마을 주민들이 던지는 대사다. “훠이 다시는 오지 말아, 훠어이 훠이….”

열일곱이란 나이에도 깊은 모성애를 담아낸 박은빈의 눈빛연기가 감탄할 만하다. 미묘한 자연변화와 심리변화를 조응시킨 조명과 음향효과도 일품이다. 다만 아기를 사람이 움직이는 인형보다는 창호지 뒤 그림자로 형상화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15일까지 서울 중구 예장동 남산예술센터. 02-3443-8695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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