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맨얼굴’ 20선]<17>유명짜한 스타와 예술가는 왜 서로를 탐하는가

  • 입력 2009년 10월 1일 02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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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의 문화에 대해 악담을 퍼붓는 것이 가능하고 실제로도 몇몇 작가들이 그래 왔다. 하지만 현재 유명인의 문화는 너무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서 만연한 질병과 유사하다. 평론가인 매튜 콜링스는 “명성이란 현재 영국에서는 하나의 질병이다”라고 할 정도다. 대중문화의 아이콘들은 실제로 모든 이를 매혹시키며, 심지어는 좌파의 학자들과 비평가마저 약간은 거리를 두기는 하지만 이 매혹을 공유한다.”》

작품보다 더 유명해진 화가들

생존 미술가로서 작품 가격이 가장 비싸기로 유명한 영국의 데미언 허스트는 “유명해지고자 하는 욕망은 예술에서는 아주 근본적인, 영원히 살고자 하는 욕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짐승의 시체를 전시하거나 형형색색의 알약을 배열한 작품으로 명성을 얻은 그는 현실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예술로 직접 갖고 들어왔다는 찬사를 얻었다.

하지만 그의 예술적 성공에는 작품성이 아니라 대중적 명성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그는 공공장소에서 성기나 엉덩이를 노출하는 악동 짓과 표절시비로 인한 법정 소송까지 불사하면서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면서 상업광고에 출연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화한 레스토랑과 바를 운영하며 장삿속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허스트와 함께 ‘영국의 젊은 예술가(YBA)’의 대표 주자인 트레이시 에민 역시 과거의 예술가와 전혀 다르다. 그녀의 미술작품은 곧 자신의 직접적 삶이다. 자신과 함께 잤던 102명의 이름을 적어놓은 캠핑 텐트나 자신이 술에 취해 벌였던 작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흐트러진 침실을 예술작품으로 둔갑시킨다.

그녀가 벌거벗은 채 보름 동안 살았던 일명 ‘스웨덴 방’이란 설치작품도 있다. 화랑을 고해성사의 장으로 변화시키면서 고백의 예술을 펼친다는 평가도 있지만 자신의 삶을 선정적으로 상품화한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그런 부정적 비평조차 그녀의 명성을 높임으로써 그녀의 작품 가격을 올려놓는 데 일조할 뿐이다.

영국의 미술비평가인 저자는 이렇게 미술과 명성의 상호의존성이 심화하는 영미 미술계의 현실에 현미경을 가져다 댔다. 미술은 예로부터 유명인사를 작품의 모델로 삼아 왔다. 하지만 앤디 워홀로 대표되는 팝아트가 등장하면서 미술작품이 아니라 미술가의 명성이 압도적으로 중요해졌다. 대중스타들이 미술품의 주요 고객으로 부상한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앤서니 퀸, 데니스 호퍼, 데이비드 보위, 폴 매커트니처럼 화가로 변신한 대중스타의 그림이 비싼 가격에 팔리는 것도 한몫했다.

명성에 대한 집착은 백인 주류미술계에 반기를 들었던 미국의 히스패닉 흑인 천재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에게서도 발견된다. 바스키아는 유명해져서 부자가 된 뒤 진짜 그림 그리기를 배우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명성은 자기 파멸로 이끄는 독이 됐다. 명성에 취한 그의 예술세계는 자기 복제의 패러디에 머물면서 성장을 멈췄다. 이를 잊기 위해 마약으로 스스로를 마취시키던 그는 결국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숨졌다. 명성이 예술의 덫이 되는 경우는 각각 자동차 사고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잭슨 폴록과 마크 로스코의 삶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미술가들은 이런 명성의 독성에 강한 내성을 보인다. 그들은 YBA처럼 명성의 위험한 줄타기를 오히려 즐긴다. 문제는 그로 인해 예술가란 꽃이 아니라 예술이란 정원 자체가 황폐해졌다는 우려가 커진다는 점이다. 연예와 시장의 힘이 지배하는 오락의 시대, 진짜 예술의 미래를 한 번쯤 고민하게 하는 책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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