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 노통브 “글 쓸땐 작곡하듯 격정에 휘감겨”

  • 입력 2009년 9월 25일 02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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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발표한 데뷔작 ‘살인자의 건강법’ 이후 매년 한 권씩 새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벨기에 출신 소설가 아멜리 노통브 씨. 사진 제공 문학세계사
1992년 발표한 데뷔작 ‘살인자의 건강법’ 이후 매년 한 권씩 새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벨기에 출신 소설가 아멜리 노통브 씨. 사진 제공 문학세계사
아멜리 노통브 씨는 컴퓨터를 쓰지 않는 작가다. 소설을 집필할 때도 용수철 달린 노트에 써내려간다. 인터뷰에 대한 답변도 서명을 담은 자필로 보내왔다.
아멜리 노통브 씨는 컴퓨터를 쓰지 않는 작가다. 소설을 집필할 때도 용수철 달린 노트에 써내려간다. 인터뷰에 대한 답변도 서명을 담은 자필로 보내왔다.
《만약 내 집 거실에서 낯선 남자가 느닷없이 죽어버린다면? 벨기에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작가 아멜리 노통브 씨(42)의 신작 ‘왕자의 특권’(문학세계사)은 이런 기이한 상황에서 출발한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바로 응급차를 부르거나 경찰에 신고할 것이고,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 없는 일상을 살아나갈 것이다. 그러나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이, 노통브 씨의 소설은 이런 상황을 그렇게 순순히 흘려보내지 않는다. 》

61번째 소설 ‘왕자의 특권’ 국내 출간 인기작가 아멜리 노통브 인터뷰

박진감 있게 표현하려고
묘사-서술보다 대화체 즐겨
이번 작품 결말 안 남긴 건
인생이 미스터리이기 때문

노통브 씨는 프랑스에서 초판만 늘 10만 부 이상 찍는 작가다. 매년 한 권씩 신작을 내는 다작의 작가인데도 낼 때마다 어김없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린다. 국내에서는 2001년 ‘적의 화장법’이 출간되면서 ‘노통브 붐’이 일었고 이어 ‘살인자의 건강법’ ‘아담도 이브도 없는’ 등 전작과 신작이 잇달아 소개되며 수많은 고정 팬을 확보했다. 파리에 머물고 있는 작가를 신간 출간을 맞아 e메일로 인터뷰했다. 평소 노트북이나 휴대전화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작가는 집필할 때처럼 인터뷰 응답도 사인을 곁들인 자필로 했다. 답변지는 그의 책을 출판해온 알뱅 미셸 출판사가 스캔해 PDF 파일로 보내왔다.

독특하고 충격적인 소재, 흡인력 있는 이야기의 힘이 돋보이는 작품을 써온 노통브 씨는 “나는 음악을 작곡하는 것처럼 강렬한 힘에 이끌려 글을 써내려 간다”고 말했다. 이번 소설 속에서도 그런 면모가 유감없이 드러난다. 올라프라는 정체불명의 한 남자가 주인공 밥티스트의 집에서 죽는다. 적절한 시점에 신고를 못한 밥티스트는 상황에 떠밀려 올라프로 행세하게 되고 초호화주택과 놀라운 미모를 가진 아내까지 차지한다. 올라프가 누군지, 직업은 뭔지, 왜 자신의 집에서 죽었는지 해결되지 않는 의문을 품은 채.

“글을 쓰게 하는 그 힘이 구성에 작용하는 것인지, 주제에 관한 것인지, 미학적인 것인지 딱히 구별할 수 없다. 서술이나 묘사보다 대화체를 선호하는 편이다. 대화로는 박진감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말처럼 속도감 있는 대화체는 노통브 씨의 트레이드마크다.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짤막하고 리듬감 있는 대화는 주제를 압축적으로 전달하거나 상상의 폭을 확대 발전시키는 촌철살인의 역할을 한다. 이번 작품의 첫 챕터는 전부 대화로만 구성돼 있다. 앞으로의 불가사의한 일을 예언하는 듯한 대화들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작가는 “대화체는 내가 생각을 해 나가는 방식과도 일치한다”고 덧붙였다.

이 작품은 미스터리 형식으로 쓰여 끝까지 시선을 뗄 수 없게 하지만 기대와 달리 왜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됐는지는 결국 밝혀지지 않는다. 반전 없이 ‘열린 결말’로 놔둔 것이다. 작가는 “그런 결말은 우리의 실제 삶과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현실을 보라. 사람들이 자기의 미스터리를 풀지 못하고 영문을 모른 채 죽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매년 8월이면 어김없이 신작을 발표하는 그는 글쓰기광이다. 그러나 발표하지 않고 묵혀둔 작품이 훨씬 더 많다고 말했다. “나이 마흔둘에 67번째 작품을 쓰고 있으니 다작인 것은 사실이다. 더욱이 앞으로도 쉬지 않고 글을 쓸 예정이다!”

현지에서 2008년 발표한 ‘왕자의 특권’은 미발표작까지 포함한 그의 61번째 소설이다. 1년 사이 여섯 편의 작품을 더 쓴 셈이다. 그는 “끝없는 창작의 원천이 뭔지는 나도 알 수 없다”면서도 “글을 쓰지 않을 때는 책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읽는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에는 한국 독자들을 위한 특별한 장면이 숨어 있다. 주인공은 자신에게 벌어진 불가사의한 일들을 해결하고자 실마리를 찾다가 ‘00 822’로 시작하는 전화번호를 찾아낸다. 프랑스에서 한국 서울로 국제전화를 걸 때 누르는 번호다. 주인공은 ‘어느 나라의 번호일까’라고 고민한다. 노통브 씨는 이 장면을 일부러 넣었다고 말했다.

“오빠가 서울에서 10년째 살고 있기 때문에 (서울 번호란 걸) 물론 잘 알고 있다!(그의 오빠는 벨기에 기업의 한국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 장면을 통해서 오빠에게 장난기 어린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오빠는 늘 ‘한국에서의 생활이 정말 행복하다’고 말한다. 한국 독자 여러분, 나도 한국에 애정을 많이 느끼고 있다. 특히 한국 음식을 무척 좋아한다. 꼭 방문하고 싶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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