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그들은 왜 폭력을 마음에 품었나

  • 입력 2009년 8월 22일 02시 58분


저자는 증오라는 감정에 대해 “지속되는 격노의 감정이다. 그 감정이 개인의 일상 대부분을 차지한다. 대상을 관찰하고 괴롭히는 데 즐거움을 느끼며 항상 강박적이고 비합리적이다”라고 말한다. 사진 제공 황금가지
저자는 증오라는 감정에 대해 “지속되는 격노의 감정이다. 그 감정이 개인의 일상 대부분을 차지한다. 대상을 관찰하고 괴롭히는 데 즐거움을 느끼며 항상 강박적이고 비합리적이다”라고 말한다. 사진 제공 황금가지
◇증오/윌러드 게일린 지음·신동근 옮김/292쪽·1만3500원·황금가지

테러위험이 커져가는 사회 증오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 위해 증오 조장하는 사람 주의를”

1941년 7월 어느 날, 폴란드 예드바브네 지역에서 주민의 절반에 해당하는 약 1600명의 유대인이 살해당했다. 피살자 중에는 아이들도 있었다. 1995년 여름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군은 무슬림 주민 7000여 명을 학살했다. 무슬림 주민들은 유엔이 정한 안전지대에 있었지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살해당했다.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는 미국 뉴욕에서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했다. 이 테러로 민간인 3000여 명이 사망했다.

정신과 의사이면서 미국 컬럼비아대 임상과 교수인 저자는 이 같은 학살과 테러의 배경으로 ‘증오(hatred)’를 꼽았다. 좌절과 절망의 원인을 남의 탓으로 돌릴 때 시기와 미움 같은 감정은 증오로 발전한다. 이 증오가 개인이 아닌 집단을 향하게 되면 그 대상 집단을 공격하는 현상, 즉 테러가 발생한다. 저자는 “테러와 폭력의 위험이 점차 커져가는 오늘날, 그 선행요인인 증오를 사회 심리학적으로 철저하게 분석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책을 썼다”고 말한다.

저자는 ‘증오가 환경에 따라 달리 표출될 수 있다’는 주장에 반대한다. “처벌받지 않을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서 우리가 이웃을 죽일 수 있을까”라고 그는 묻는다. 가난 등에서 유래한 박탈감도 증오의 필요조건은 아니다. 미국의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가난한 소수 집단이 아니라 다수 집단인 백인 기독교도 출신이다. 법 절차를 따르지 않고 임의로 사람을 체포해 처벌하는 린치단 역시 지배계층에서 나왔다.

그가 말하는 증오는 ‘화’나 ‘분노’와는 다르다. 그는 “이득이나 복수를 위해 배신과 파괴를 일삼는 증오를 말하는 것이다”고 말한다. 이런 구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와도 일치한다. ‘화는 공격받았을 때 일어나지만 적개심은 그렇지 않고서도 일어날 수 있다. 단지 어떤 사람의 성격이 자신과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도 그 사람을 증오할 수 있다. 화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사그라질 수 있지만 증오는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증오는 어떻게 해서 생기는 것일까. 저자는 ‘편집적 전환’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내적인 갈등을 외부의 특정 대상에게 전가하는 과정을 통해 증오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편집증 환자는 자신의 실패와 불행을 타인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스스로를 실패자가 아닌 희생자로 여기게 된다. 이 때문에 증오가 생기는 과정에서 반드시 적을 설정하게 된다. 저자는 “이런 과정을 통해 적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희생된 사람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게 된다”고 설명한다.

증오는 역사상 자주 집단적인 ‘증오의 문화’와 ‘증오자들의 문화’를 이룬다. ‘증오의 문화’는 증오를 낳고 조장하는 자연적인 공동체로 나치처럼 역사나 지역을 공유한다. 그 지도자와 교육 기관, 지배적 종교는 적에 대해 독기 품은 태도를 사회 구성원들에게 주입한다.

반면 ‘증오자들의 문화’는 공통된 증오를 갖고 있는 개인들이 공동의 적에 대항해 결탁한 인위적 공동체이며 여기엔 공통된 문화, 역사, 언어, 지역이 필요하지 않다. 알카에다나 전 세계의 신나치주의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증오의 뿌리는 겉으로는 정상처럼 보이는 표면으로 덮여 있어 얼마나 깊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 알 수 없다. 따라서 근원을 찾아내 없애거나 증오를 예방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저자는 “개인의 비참함을 냉소적으로 악용하고 조종하려는 사람들,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증오를 조장하고 조직화하려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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