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벽속에 감춰진 문… 그 뒤로 끝없이 이어진 복도

  • 입력 2009년 8월 22일 02시 58분


막바지 여름을 꺾는 공포-추리소설 잇달아 출간

8월도 막바지에 접어들지만 때늦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더위가 길어질 것을 예상이라도 한 것일까. 체온을 낮추는 데 도움을 줄 만한 공포와 추리소설이 잇따라 출간됐다.

‘써틴’(볼프강 홀바인, 하이케 홀바인 지음)은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모티브를 얻어 판타지소설의 기본 골격에 공포소설의 분위기를 덧입혔다. 13세 생일까지 13일이 남은 날, 13일의 금요일에 태어난 12세 소녀 써틴은 엄마의 유언대로 독일에 사는 할아버지를 찾아 비행기에 오른다. 그러나 할아버지를 찾아가는 길은 순탄치 않다. 비행기 안에서는 낯선 남자가 자신을 죽이려 하고 공항에서는 청소년 보호국 공무원과 경찰들이 그를 쫓는다. 그러나 가장 두려운 것은 따로 있다. 벽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문, 그 뒤로 이어지는 끝없는 복도,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하는 남자의 눈빛…. 써틴이 본 이 모든 것을 다른 이들은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할아버지의 집에서도 불길한 기운이 풍기기는 마찬가지다. 써틴은 할아버지의 집과 도시에 얽힌 비밀을 풀기 위한 모험을 시작한다.

‘4의 비밀’(프레드 바르가스 지음) 역시 비밀을 간직한 도시, 파리를 무대로 한 추리소설이다. 파리 이곳저곳의 아파트에서 의문의 낙서가 발견된다. 좌우가 뒤바뀐 ‘4’와 ‘CLT’라는 글씨를 검은색 페인트로 쓴 낙서다. 이 낙서가 그려지지 않은 집에서 목 졸린 채 숨진 시신이 나오기 시작한다. 시신의 공통점은 쥐벼룩에 물린 자국이 있다는 것, 마치 흑사병에 걸린 시신처럼 온몸에 목탄이 얼룩덜룩하게 칠해져 있다는 점. 그러던 중 1920년경 파리에서 흑사병을 가리키는 ‘제9종 질병’이 유행해 40여 명이 사망했으며 당시 정부와 경찰이 이를 은폐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파리 경시청의 형사 아담스베르는 흑사병에 조예가 깊은 인물이 범인일 것으로 여기고 1920년 유행 당시의 생존자와 후손을 중심으로 범인을 추적한다.

“그 빨간 머리 남자를 죽인 뒤 나는 저녁식사로 굴 요리를 먹으러 퀸스로 갔다.” ‘밤의 의미’(마이클 콕스 지음)의 첫 문장이다. 소설은 우아하고 지적인 살인범 에드워드 찰스 글리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어린 시절 친구였던 포이보스 돈트 때문에 귀중한 고서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학교에서 쫓겨난 글리버는 돈트의 행적을 추적하다 그의 배신에 거액의 유산이 얽힌 깊은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글리버는 복수를 결심하고 돈트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인간의 복수심과 절망 때문에 발생하는 공포를 다룬 세 소설과 달리 ‘내추럴 셀렉션’(데이브 프리드먼 지음)은 자연으로부터 오는 공포, 원초적인 생존본능을 자극하는 공포를 다뤘다. 심해에서 발생한 바이러스에 적응하기 위해 괴물로 진화한 가오리 떼가 인간을 습격하기 시작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머리의 뿔, 높은 지능, ‘조스’를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섬뜩한 괴물의 이미지를 창조했다.

가볍게 읽을 만한 단편집도 있다. 짧지만 공포의 밀도는 장편 못지않다. ‘러브 크래프트 전집 1, 2’는 애드거 앨런 포와 함께 현대 공포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워드 P 러브크래프트의 단편을 모았다. 심해에서 출현한 괴물, 비밀을 간직한 집, 사람의 영혼을 홀리는 연주를 하는 악기 등 현대 공포물에서도 끊임없이 재창조되는 모티브들이 등장한다.

나쓰메 소세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미야자와 겐지 등 일본 근·현대 문학의 대가들도 공포소설을 썼다. 이들을 포함한 작가 열 명의 공포소설을 엮은 ‘일본 호러 걸작선’을 통해 지금까지 이어지는 일본 장르문학의 원동력을 발견할 수 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패러디해 추리소설로 재탄생시킨 ‘소세키 선생의 사건일지’(야나기 고지 지음)도 출간됐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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