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9년 8월 7일 02시 59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사의당은 조선 인조가 고모인 정명공주에게 하사한 저택으로 당대 대표 건축물로 손꼽혔지만 지금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조선 후기의 문인 홍경모(1774∼1851)가 1824년 사의당의 역사, 구조, 조경, 실내장식 등을 체계적으로 기록한 ‘사의당지’에서 조선 가옥과 양반가의 주거 문화를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최근 사의당지를 번역한 ‘사의당지, 우리 집을 말한다’(휴머니스트)가 나왔다. 총 8장 중 집의 구조를 설명한 ‘당우제이(堂宇第二)’에서 저자는 “정당(본채)의 제도(구성)는 7개의 기둥과 20칸 반이다”라며 각 건물의 배치부터 기둥 수까지 기록했다. 숙신씨(肅愼氏·고조선 시기의 중국 이민족)의 돌도끼와 돌화살촉, 서양의 자명종, 일본에서 들여온 종려나무와 왜철쭉 등 집안 대대로 수집해온 각종 골동품과 외국 물건에 대한 기록도 나온다. “트인 마루가 온돌방보다 배가 되는 것은 옛 제도인데, 이제 모두 이와 반대로 하였으니 지금에 맞게 했다”는 구절에서는 조선 후기 주거지에서 마루보다 온돌의 비중이 더 커졌음을 알 수 있다. ‘사의당지’를 번역한 이종묵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특정 가옥에 대해 이 정도로 상세하게 묘사한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다”면서 “‘사의당지’는 조선 후기 서울 선비들의 주거문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