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갱단에 의존하는 빈민가의 진짜 얼굴

  • 입력 2009년 7월 25일 02시 57분


◇괴짜사회학/수디르 벤카테시 지음·김영선 옮김/392쪽·1만5000원·김영사

1989년 가을, 미국 시카고대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는 젊은 대학원생이었던 저자는 흑인 빈민가 로버트 테일러 주택단지를 방문한다. 직접 빈민들을 인터뷰하고 그 삶을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면서 가난하다는 것은 어떤 느낌인가?’ 같은 질문을 던지고 다니던 저자는 로버트 테일러의 갱단 두목 제이티를 만난다. 제이티는 저자의 질문을 “우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아니라 깜둥이일 뿐”이라고 일축하며 “이런 얼간이 같은 질문을 던지는 대신 우리 같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그 삶을 이해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저자는 그 뒤 10여 년간 제이티와 함께 갱단 두목의 하루를 체험하는 일부터 지역행사에 참여하고 매춘부와 마약 중독자들을 돕는 일까지, 빈민가의 진짜 모습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이런 저자의 연구는 ‘객관적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연구윤리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에게 빈민가 사람들은 모두 ‘부정 수익자’들이다. 정부나 자선단체의 손이 닿지 않는 빈민가에서 부정 수익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빈민을 돕는 주민대표 베일리 부인조차 갱단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그 지위를 유지한다. 갱단은 마약을 판매하고 매춘부를 관리하지만 동시에 주민들이 다른 지역 갱단의 총격에 희생되지 않도록 보호한다.

로버트 테일러 재개발이 시작되고 저자가 뉴욕에 일자리를 얻으면서 긴 관찰은 끝을 맺는다. 하지만 저자와 제이티의 우정은 그 뒤로도 이어진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빈민가의 삶을 연구하고 있는 저자는 “이 책은 제이티 없이는 생겨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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