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해적, 쪽빛 지중해를 잿빛으로 바꾸다

입력 2009-07-11 02:59수정 2009-09-22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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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프리카를 근거지로 한 사라센 해적이 맹위를 떨치던 시절, 침투해오던 해적을 감시하고 방어하기 위해 세워진 이탈리아 나폴리의 해변 요새. 사진 제공 한길사
◇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상·하)/시오노 나나미 지음·김석희 옮김/각 404, 480쪽·1만5500, 1만6500원·한길사

《코발트빛 바다, 작열하는 태양, 바다 빛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회벽 건물….

‘지중해’라고 하면 떠오르는 풍경이다.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는 스페인 동해안에서 시작해 프랑스 남해안과 이탈리아 반도를 지나는 풍경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특징을 하나 포착했다.

이 지역의 건물들이 오래돼 봤자 17, 18세기 바로크시대 건물이고, 대개는 19세기 이후에 지어진 건물이라는 사실이다. 》

중세 유럽 1000년史는
이슬람 해적과의 싸움
로마 침공할만큼 강력
주민들은 암흑의 나날

그나마 바로크시대 건물이 남아 있는 곳은 바르셀로나, 마르세유, 제노바, 피사, 나폴리 등이다. 저자는 “이들 도시에 오래된 건물이 남아 있는 것은 방위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다른 도시나 마을들은 해적의 습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19세기 이후에 지어진 건물이 대부분이다”고 설명한다.

이 말에 이 책의 주제가 담겨 있다. 다름 아닌 ‘해적’이다. 책에서 그는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를 ‘해적’이라는 주제로 풀어썼다.

팍스 로마나(로마제국에 의한 평화)가 무너진 뒤 한동안 무질서했던 지중해를 지배한 것은 ‘이슬람 해적’이었다. 저자는 “7세기부터 18세기까지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북아프리카를 근거지로 한 이슬람 해적을 빼고는 지중해 세계의 역사를 이야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아라비아 반도에서 발흥한 이슬람 세력은 7세기 이후 주변 지역을 급속도로 정복했다. 635년 비잔티움제국의 주요 도시 가운데 하나였던 다마스쿠스를 빼앗더니, 670년에는 오늘날 튀지니의 수도인 튀니스에서 남쪽으로 150km 떨어진 곳에 카이루안이라는 이름으로 북아프리카 최초의 아랍인 도시를 건설했다.

북아프리카로 진출한 이슬람 세력은 지중해 건너 유럽으로 눈을 돌렸다. “유랑민으로 살아온 아랍인으로선 오랫동안 공을 들여야 하는 농사보다 손쉽게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해적 활동이 더 매력적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중해 건너편 기독교 세력은 이들을 ‘사라센 해적’으로 불렀다.

이슬람 해적이 무서웠던 것은 그들에게 ‘성전(聖戰)’이라는 구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시오노 나나미는 “그들에게 이 세계에는 ‘이슬람의 집’과 ‘전쟁의 집’밖에 없고, ‘이슬람의 집’에 속하는 자의 책무는 그 집 바깥쪽에 있는 ‘전쟁의 집’에 가서 싸우고 승리함으로써 ‘이슬람의 집’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652년, 사라센 해적이 시칠리아 섬의 시라쿠사에 상륙함으로써 기독교 세계를 처음 습격했다. 그 후 잇따른 해적의 침략으로 기독교 세계는 공포에 휩싸였다. 그런데도 이들의 안전을 지켜야 할 비잔티움제국은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당시 비잔티움제국은 수도 콘스탄티노플까지 종종 위협당할 정도로 세력이 약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830년 봄, 이슬람 군대는 로마 함락에 나섰다. 성벽을 무너뜨리진 못했으나 성 바깥의 교회와 집을 완전히 파괴했다. 10세기 말 지중해 세계의 이슬람 세력은 비잔티움제국도 신성로마제국도 쉽게 대항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해졌다. 저자는 “중세 전기 지중해에 이름을 붙인다면 ‘아프리카의 바다’라고 하는 편이 적절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 해역의 제해권이 완전히 북아프리카에 사는 이슬람교도의 손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라센 해적의 위협에 시달리는 해안지방 주민들에게는 희망이 없었다. 해적선의 습격을 빨리 발견해 달아날 수 있도록 바다를 널리 바라볼 수 있는 지점에 망루를 세우고 감시하는 게 전부였다. 이를 이탈리아어로 ‘토레 사라체노(사라센의 탑)’라고 불렀는데 지금도 이탈리아에는 많은 망루가 남아 있다.

1453년 기독교 진영은 결정타를 맞는다. 오스만튀르크 제국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것이다. 이때부터 해적들을 앞세워 서구에 대대적인 공세를 시도하는 오스만튀르크와 기독교 연합세력 간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진다.

지중해의 해적은 18세기에 들어 약화되기 시작했다. 1740년, 튀르크는 해적행위를 전면적으로 금지한 ‘해적금지령’을 선포했다. 1856년에는 모든 해적행위를 엄금한다고 선언한 ‘파리 선언’이 발표됐다. 이로 인해 적어도 지중해 세계에선 해적이 자취를 감췄다.

저자는 “지중해 연안이 모두 관광지로 변한 현재 상황에서 그런 곳들 대부분이 과거에는 해적에게 분탕질을 당하고 사람도 살지 않는 땅이었다고는 상상조차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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