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시작된 ‘광고주 압박’… “조폭이 물건사라 들이미는 격”

  • 입력 2009년 6월 11일 02시 55분


8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태평로 코리아나호텔 앞에서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 회원들이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 메이저 신문 광고기업 불매운동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한 제약사를 첫 대상으로 선정했고 제약사 측이 한겨레 경향신문에 광고를 내겠다고 하자 불매운동을 철회했다. 사진 제공 조선일보
8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태평로 코리아나호텔 앞에서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 회원들이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 메이저 신문 광고기업 불매운동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한 제약사를 첫 대상으로 선정했고 제약사 측이 한겨레 경향신문에 광고를 내겠다고 하자 불매운동을 철회했다. 사진 제공 조선일보
“메이저 신문 광고말라”서 “한겨레-경향에 광고하라”
전화공세 작년과 같은 양상…법조계 “강요-협박죄 해당”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 때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 메이저신문 3사에 대한 광고 중단 운동을 벌였던 이른바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언소주)’이 광고주인 기업을 상대로 다시 광고주 압박 운동에 들어갔다. 언소주는 지난해 광고 중단 운동에 대해 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린 만큼 이번엔 나름대로의 법률 검토를 거쳐 합법적인 소비자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기업을 압박하는 ‘행태’는 지난해와 큰 차이가 없다는 견해가 많다.

○ 불매 대상 제품 인터넷에 올리고 항의 협박 전화 여전

언소주는 8일 첫 번째 불매 운동 대상으로 모 제약을 정하고 이 회사의 대표 제품들을 인터넷에 올렸다. 이 단체 회원들은 불매 운동을 시작했고, 주요 인터넷 포털과 카페에는 이 제약사 제품을 사지 말자는 내용의 글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들은 지난해 메이저신문사에 대한 광고 중단 운동이 불법이라는 판결이 내려진 뒤에는 인터넷에서 ‘오늘의 공부(광고주 확인)’ ‘칭찬하기(부드럽게 항의하기)’ 등 우회적인 표현을 써가며 대상 기업의 정보를 공개해 압박하고 있다.

전화 팩스 등을 이용해 협박하는 방식도 지난해와 비슷했다. 이 제약사는 8, 9일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많은 항의와 협박성 전화가 걸려왔다고 밝혔다. 이 제약사 관계자는 “지난해 광고 중단 운동 때보다 더 많은 전화가 걸려왔다. 대부분의 전화가 불매 운동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메이저신문사에 광고를 하지 말라’는 내용으로 지난해의 협박 전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제약사는 결국 불매 대상 기업으로 지목된 지 하루 만에 언소주의 요구대로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에 광고를 냈다. 회사 홈페이지에도 “앞으로 특정 언론사에 편중하지 않고 동등하게 광고를 집행해 나가겠다”고 올렸다.

○ 지난해와 달라진 점은

지난해 메이저신문 3사에 대한 광고 중단 운동은 기업들에 ‘동아일보 등에 광고를 하지 말라. 이미 맺은 광고 계약은 철회하라’는 식으로 이뤄졌다. 광고를 하는 기업은 물론 동아일보 등 메이저신문사에도 항의와 협박성 전화를 일삼아 업무를 마비시켰다. 서울중앙지법은 올 2월 당시 광고주 협박을 주도한 누리꾼 24명 전원에 대해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유죄 판결했다.

언소주는 이번에는 메이저신문과 동등한 수준으로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에 광고를 하라는 새로운 요구를 들고 나왔다. 법조계에서는 이러한 언소주의 행위가 광고주 압박 대상으로 지정된 기업에 대한 업무방해, 강요, 협박죄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전화나 인터넷을 이용한 압박이 여전히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특정 언론에 광고를 싣도록 요구했다는 점에서 위력행사로 경제적 이득을 챙기는 경우에 해당하는 공갈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법원 관계자는 “광고주 기업이 자진해서 메이저신문의 광고를 철회하거나 한겨레, 경향신문에 광고를 하더라도 위력행사 때문에 자유로운 의사에 반해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라면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며 “이번 행위도 올 2월 법원이 유죄로 인정한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 “소비자 주권 내세운 다수의 폭력”

전문가들은 언소주의 활동이 정당한 소비자운동이 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김상겸 동국대 교수(법학)는 “광고주를 압박하기 위해 제품 불매 운동을 하는 것은 신문에 대한 직접적인 소비자운동이 아니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김민호 성균관대 교수(법학)도 “신문의 논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모든 기업에 불매 운동을 하는 것은 소비자 주권을 내세운 ‘다수의 폭력’이다. 조직폭력배가 사람들을 위협해 물건을 사라고 들이미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했다.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檢 “경위 조사… 언소주 형사처벌 여부 검토”▼

서울중앙지검은 언소주가 한 제약사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 메이저신문에 대한 광고를 철회하고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에 광고를 내도록 요구하면서 광고주 압박 운동을 벌인 것과 관련해 11일 이 제약사 관계자를 불러 구체적인 경위를 조사할 계획이다.

검찰은 올 2월 광고주 협박사건에 유죄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법의 1심 판결문 내용을 검토하는 등 언소주의 이번 행위가 불법행위에 해당하는지 법률검토도 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10일 “언소주의 행위가 정상적인 소비자운동에서 벗어난 부분이 있는지, 해당 업체의 피해는 얼마나 되는지 주시하고 있다”며 “검토 결과 형사처벌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엄정히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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