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은 한국인의 정신”

  • 입력 2009년 6월 4일 02시 59분


‘한국의 정원’ 펴낸 전통건축 권위자 주남철 교수

《“한국의 건축은 건축물과 그 건축물을 둘러싸고 있는 정원이 하나로 융합될 때 비로소 완전해집니다.” 한국 전통 건축 분야의 권위자로 꼽히는 주남철 고려대 명예교수(70·건축공학·사진)가 ‘한국의 정원’(고려대출판부)을 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한국 전통건축의 ‘밖’을 완성해온 한국 정원의 진면목을 담은 책이다.》

“지형 이용 자연미 그대로 살려
선조들의 품격높은 삶 느끼길”

‘정원(庭園)’은 뜰(庭)과 언덕(園)을 의미하는 합성어다. 한국 정원의 특징은 뜰과 언덕 중에서 언덕(동산)을 꾸미는 방식에서 도드라진다. 주 교수는 “한국은 산악국가로 예부터 산을 등지고 물을 앞에 둔다는 배산임수의 원리를 사용해 집을 지었다”며 “이 때문에 한국 전통건축물 대부분은 뒤편의 북쪽 정원에 자연스럽게 동산이 생기는데, 이를 활용해 정원을 꾸몄다”고 설명했다. 작은 산이나 폭포를 만들어 인공 정원을 조성했던 일본이나 연못을 파낸 흙을 쌓아 언덕을 만드는 등 거대한 규모의 정원을 추구한 중국과는 달리 한국 정원에서는 특유의 자연미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주 교수는 “이번에 책을 쓰며 1717년에 쓴 ‘숙종실록’에서 ‘정원’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구절을 발견했다”며 “우리나라의 정원이 그만큼 오랜 전통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기존에는 1889년의 일본 문헌 ‘원예고’에서 ‘정원’이라는 단어가 다수 사용됐음을 들어 ‘정원’이라는 말이 일본에서 처음 사용됐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소나무 등 침엽수보다 사계절의 변화를 확연히 느낄 수 있는 활엽수를 적극 사용한 점도 한국 정원의 특징이다. 주 교수는 “한국에서는 자연적 송림을 제외하고는 침엽수를 무리지어 심지 않았다”며 “자연의 변화를 온전히 느끼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정원의 정신을 16세기경 조선 문인 송순의 ‘면앙정잡가(면仰亭雜歌)’의 일부 구절을 바꿔 표현했다.

“십년을 경영하여 초가 한간을 지으니/반간은 청풍이요 반간은 명월이라/청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두고두고 보리라.”

이 시조에서 초가 한간은 면앙정잡가의 ‘초려삼간’을 바꾼 것이고, 두 번째 구절은 ‘나 한간 달 한간에 청풍 한간 맡겨두고’를 바꾼 것이다. 주 교수는 “집 안에 나는 없고 청풍과 명월, 그리고 청산만 있다는 이 말처럼 자연에의 합일이 우리 정원의 진수”라고 설명했다.

주 교수는 한국 정원의 백미로 소쇄원(전남 담양군 남면)을 꼽으며 “한 걸음 뗄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는 일보일경(一步一景)을 체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소쇄원의 광풍각은 건물 안과 밖을 하나로 잇는 한국 창의 독특한 면모를 보여준다. 광풍각의 창호는 수직으로 들어올려 천장의 들쇠에 매다는 방식으로 여닫기 때문에 창을 열면 사방이 트인 건물로 변신한다. 주 교수는 “탁 트인 시야를 통해 자연과 혼연일체가 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정원의 모든 요소가 집약돼 있는 곳으로는 창덕궁 후원을 꼽았다. 특히 창덕궁 낙선재 후정은 다섯 단의 석단을 쌓고 굴뚝과 각종 괴암, 돌로 만든 연못으로 꾸며 한국 정원의 중요한 구성요소 중 하나인 석물(石物)의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주 교수는 “느림의 미학이 사라지고 효용만을 추구하는 세상이 되면서 우리 정신세계가 빈곤해졌다”며 “우리 정원 속에 녹아 있는 선조들의 풍요롭고 품격 높은 삶을 느끼며 사람들이 자신의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책을 썼다”고 말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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