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유종필]우리 대통령도 도서관에 관심을

  • 입력 2009년 5월 23일 02시 59분


미국에서 발행하는 ‘아메리칸 라이브러리스’ 2005년 8월호는 당시 상원의원 버락 오바마를 큼지막한 인물사진과 함께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도서관과 무관한 인물을, 상원 입성 1년도 안 된 애송이 정치인을 이렇게 처리한 일은 분명 이례적이다.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오바마는 그해 6월 전미국도서관대회 개막식에 참석했는데 기조연설이 심금을 울려 열렬한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래서 이 잡지가 파격적 편집을 했다. 자신의 체취가 물씬 묻어나는 이 연설에서 그는 ‘더 큰 세상을 향해 열린 창’이라고 도서관을 정의하고 사서는 ‘진실과 지식의 수호자’라고 한껏 띄웠다. 연설 말미에서 현 시대를 ‘지식이 권력이 되고 기회와 성공의 관문이 되는 시점’으로 보면서 “나는 한밤중에 여섯 살, 세 살짜리 두 딸과 함께 앉아 책을 읽어주고 있을 때, 그리고 아이들이 스르르 잠들어 가는 모습을 지켜볼 때, 그때가 내가 생각하는 천국의 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된 뒤 의회에 제출한 2010년도 예산안에서 도서관의 가치와 중요성을 언급했고 ‘미국 재건 및 재투자법’에 서명한 뒤에도 교육에서 도서관이 차지하는 중추적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뉴욕공공도서관 미드맨해튼 분관의 직업정보 코너에서 직장을 소개받아 시카고로 가는 등 이래저래 도서관과의 인연이 많다. 미국의 다른 대통령도 도서관의 가치를 높게 인식했던 것 같다. 세계 도서관의 메카라 할 수 있는 의회도서관의 3개 건물 명칭부터 애덤스(2대) 제퍼슨(3대) 매디슨(4대) 등 대통령의 이름에서 따올 정도로 건국 초기 대통령들이 국가도서관 체제를 정립했다. 레이건도 1981년 의회도서관의 메디슨관 준공식에 참석하는 성의를 보였다. 얼마 전 퇴임한 조지 W 부시는 사서 출신 로라를 도서관에서 처음 만나 결혼했는데, 로라 부시는 퍼스트레이디 시절 도서관을 수시로 방문하여 이용자와 대화를 나누고 어린이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는 등 도서관 봉사활동을 꾸준히 했다.

문화대국을 자임하는 프랑스는 1996년 센 강변에 야심적으로 신축한 국립도서관을 미테랑국립도서관으로 명명했다. 대통령 재임 시 국립도서관 신축을 선언하고 무려 40여 차례나 현장을 방문하여 각별한 관심을 나타냈던 미테랑을 기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우리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도서관에 큰 관심을 나타낸 분은 많지 않았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더 급했기 때문으로 이해하고 싶다.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국립중앙도서관의 디지털도서관 개관일(25일)에 이명박 대통령이 도서관과, 도서관이 상징하는 지식정보의 가치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기를 기대해 본다.

유종필 국회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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