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철학 본질은 인간 존엄”

  • 입력 2009년 5월 13일 02시 54분


《백종현 서울대 철학과 교수(59·사진)는 철학과 학부 2학년 때인 1970년 이마누엘 칸트의 책에 처음 손을 댔다. 서울 충무로의 소피아서적에서 산 ‘순수이성비판’의 독일어 원전이었다. 명색이 철학을 하기로 했는데 칸트 책은 꼭 봐야 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칸트를 이해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렇게 칸트와 씨름하기 시작한 그는 1980년 독일로 갔다. 프라이부르크대에서 ‘칸트 순수이성비판에서 대상 개념에 대한 현상학적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것은 1985년.

칸트 전문가의 반열에 마침내 이름을 올렸다.》

순수이성-실천이성 이어 ‘판단력비판’ 완역한 백종현 교수

“원전의 어감 살리는 데 주력… 일본식 단어 바꿔

이성 안에서의 신앙 다룬 ‘…종교’ 번역 도전”

그때 칸트와의 새로운 씨름이 시작됐다. 후학과 일반 독자를 위해 칸트의 저서를 정확히 번역하는 과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어 원전을 놓고 번역을 시작한 백 교수는 2002년 ‘실천이성비판’, 2006년 ‘순수이성비판’에 이어 최근 ‘판단력비판’(아카넷)을 번역 출간했다. 칸트 철학을 대표하는 이른바 ‘3비판서’ 번역을 마무리한 것이다.

그는 “한 사람이 3비판서를 모두 번역한 것도, 원전을 토대로 번역한 것도 국내에서 처음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특히 원전을 번역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칸트 저서의 다른 번역서들은 일본어본을 우리말로 옮긴 중역(重譯)본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백 교수는 원전 번역과 중역의 가장 큰 차이를 “어감의 차이”로 꼽고, “어감의 차이로 인해 완전히 다른 개념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역본에서 그동안 사용해온 오성(悟性)이라는 단어를 예로 들었다. 이는 독일어 ‘페어슈탄트(Verstand)’를 번역한 것으로 원래 뜻은 ‘판단하는 능력’이다. 백 교수는 “일본에선 오(悟)라는 한자에 ‘안다’는 뜻도 있어 이를 ‘오성’으로 번역했으나 우리말로 ‘오’는 ‘깨닫다’는 뜻이 강하므로 ‘지성(知性)’으로 번역하는 게 더 정확하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만족(滿足)’으로 번역돼온 ‘볼게팔렌(Wohlgefallen)’은 ‘흡족(洽足)’으로 옮겼다. 어떤 결여나 부족함이 채워져 마음의 평화를 얻은 상태인 ‘만족’보다 결여와 무관하게 족함을 느끼는 ‘흡족’이 단어의 본래 뜻에 더 부합한다는 것이다.

백 교수는 칸트의 3비판서를 진선미(眞善美)로 설명했다. 순수이성비판은 형이상학과 인식론적 관점에서 진리의 문제를 다룬 책이다. 실천이성비판은 ‘나는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으로 윤리학 차원의 논의를 담고 있다. 판단력비판은 미(美)의 가치와 원리에 대한 탐구를 다뤄 미학이론, 예술이론을 공부하는 이들의 필독서로 꼽힌다.

그는 이번 번역을 마친 뒤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고 말했다. 칸트가 종교 철학적 시각에서 쓴 ‘순전한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를 번역하는 일이 남았다는 얘기였다. 그는 “이성의 한계를 넘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신앙을 얘기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이성을 통해 신앙으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한 책”이라면서 “어떻게 보면 칸트의 모든 공부의 종착점이라고 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백 교수는 “인간의 존엄성을 끊임없이 강조했다는 점에서 칸트의 철학은 시대를 초월한 보편성을 갖고 있으므로 오늘날에도 읽을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워낙 어렵기 때문에 3비판서를 모두 권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만약 일생에 책을 딱 한 권만 읽겠다고 한다면 실천이성비판을 권하고 싶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의미, 존엄하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칸트의 3비판서에 나오는 주요 명제

▼순수이성비판 △개념 없는 내용은 맹목적이고, 직관 없는 사상은 공허하다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은, 동시에 경험의 대상들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이다

▼실천이성비판 △너의 행위의 준칙이, 동시에 보편적 법칙 수립에 원리가 될 수 있도록 그렇게 행위하라 △너 자신의 인격이나 다른 사람의 인격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목적으로 대하라

▼판단력비판 △취미란 상상력의 자유로운 합법칙성과 관련해 대상을 판정하는 능력으로서 미적인 것을 판정하는 능력이다 △상상력은 독자적이며 가능한 직관들의 임의적 형식들의 창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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