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권력의 눈’ 우리의 눈도 지배한다

  • 입력 2009년 5월 9일 02시 56분


자크 루이 다비드의 ‘호라티우스의 맹세’(1785년). ‘비주얼 컬처의 모든 것’의 저자에 따르면 이 그림에서 여성은 남성 크기의 4분의 3 비례에 맞춰져 있다. 그림이 실재를 묘사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왕이나 남성 같은 당대 권력의 관점이 반영된 것이다. 사진 제공 홍시
자크 루이 다비드의 ‘호라티우스의 맹세’(1785년). ‘비주얼 컬처의 모든 것’의 저자에 따르면 이 그림에서 여성은 남성 크기의 4분의 3 비례에 맞춰져 있다. 그림이 실재를 묘사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왕이나 남성 같은 당대 권력의 관점이 반영된 것이다. 사진 제공 홍시
◇비주얼 컬처의 모든 것/니콜라스 미르조에프 지음·임산 옮김/451쪽·1만8000원·홍시

“영상은 일상의 한 부분이 아니라 일상 그 자체다.” 이 책은 텔레비전, 영화, 폐쇄회로(CC)TV 등 온갖 영상으로 구성된 오늘날 ‘보는 행위’의 의미를 묻는다. 사람들은 편집이나 특수효과로 영상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눈에 보이는 그 영상만큼은 실재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영국 출신의 시각문화론 연구자(미국 뉴욕대 교수)인 저자에 따르면 “보는 것이 믿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보는 행위’는 시대를 지배하는 권력의 관점에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1929∼2007)는 “걸프전쟁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안방에서 영상으로 재구성된 전쟁은 실재와 달랐다는 것. 저자는 목표물을 정확히 맞히는 것처럼 보인 스마트 폭탄이 실제로는 구식 미사일보다 정확성이 떨어졌다고 말한다. 편집되지 않은 실재를 보여준 듯한 전쟁도 ‘미국의 관점’에서 봐야 했던 것이다.

저자는 보는 모든 것이 영상으로 구성된 시대의 삶을 분석한다. 우리는 “세상을 그린 그림이 아니라 그림으로 표현되고 포착된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1999년에 출간됐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영상매체 환경 탓에 구문으로 여겨질 부분도 있지만 이 책이 통찰한 영상문화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영상이 사실처럼 보이는 것이 실제로 현실과 닮았기 때문인지 현실처럼 표현됐기 때문인지에 대한 논란은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람들은 당대 서양 미술이 창안한 원근법으로 표현된 이미지가 실재와 같다고 여겼지만 원근법은 왕이나 남성 같은 당대 권력의 관점을 반영했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지을 때 회화의 원근법처럼 풍경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루이 14세의 자리였다. 원근법은 왕이 볼 수 있는 시선을 뜻했다. 회화의 원근법상 왕이 신하보다 작게 보일 경우 왕은 원근법에서 예외였다. 저자는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의 그림 ‘호라티우스의 맹세’(1785년 작)에 표현된 여성은 남성의 4분의 3 비례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현대의 영상문화는 영상과 실재를 더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원조는 1992년 미국에서 방송된 것이다. 젊은이들이 집 한 채를 빌려 생활하는 모습을 기록한 ‘리얼 월드’다. 젊은이들은 생활하면서 느낀 점을 따로 카메라 앞에서 얘기하지만 리얼리티는 일부에 불과했다. 한 흑인 출연자는 로스앤젤레스 폭동에 대해 백인과 토론했던 내용이 삭제되고 격렬히 논쟁하는 몇 컷만 나왔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1982년 미국의 한 심리학자가 온라인 토론 그룹에서 자신의 아바타를 자동차 사고로 장애를 입은 여성인 줄리로 설정했다. 일상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없는 줄리가 온라인에서 사회성을 회복하는 과정이 공개되면서 인기를 얻었지만 이 감동 스토리는 모두 거짓이었다. 한국에 인터넷이라는 용어가 쓰이지도 않았던 이때 일어난 일은, 왜곡된 사실이 진실로 호도되며 사회 전체를 들썩이게 만드는 21세기 한국의 영상, 인터넷문화가 27년 전의 해프닝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을 성찰하게 한다.

저자는 영상문화의 글로벌화에도 주목한다. 1997년 사망한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는 “나는 사진에 찍혀서 존재한다”(라캉)는 말을 가장 잘 보여줬다. 저자는 “다이애나가 어떤 식으로든 사진을 거치지 않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말한다.

다이애나의 죽음이 텔레비전을 통해 세계에 방영되면서 이채로운 현상이 일어났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짐바브웨에서도, 1982년 영국과 전쟁을 벌인 아르헨티나에서도, 영국의 군주제와 별 상관없는 아시아의 여러 국가에서도 왕세자비의 죽음을 공감하며 안타깝게 추모한 것이다. 인류학자 베네딕트 앤더슨이 저서 ‘상상의 공동체’에서 말한 것처럼 민족이 상상의 공동체이며 19세기 신문이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했다면 20세기에는 텔레비전 영상이 세계 전체를 상상의 공동체로 만든 것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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