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모델 따라하기 전략은 필연일까?”

  • 입력 2009년 5월 5일 15시 18분


백영서 교수는 중국이 걸어온 100년의 시간을 5000년이라는 긴 역사 속에서 놓고 조망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백영서 교수는 중국이 걸어온 100년의 시간을 5000년이라는 긴 역사 속에서 놓고 조망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인터뷰 <창작과 비평> 편집주간 백영서 연세대 교수

"어찌하여 우리나라는 망했으며, 아편전쟁 이후로 강대국인 중국은 몰락일로인데 반하여 3국 중에 가장 뒤떨어졌던 일본이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겪고 난 다음에 오늘날처럼 강력한 나라가 될 수 있었는가? 무슨 이유로 일본은 근대화하는 데 성공했는가?"(김준엽 <장정>)

이 같은 동양사학계 원로(元老)의 문제의식은 지난 100여년을 관통해온 중차대한 질문이다. 이제껏 그 답은 '근대 우등생인 일본, 절반의 열등생인 중국, 그리고 가장 큰 희생자이자 열등생인 조선(한국)'이라는 천편일률적 도식이었다. 때문에 우등생인 '일본 따라 하기 전략'은 필연처럼 느껴졌고 상당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 성공한 일본, 절반의 실패 중국, 낙오자 한국?

무엇보다 중국, 한국의 역량이 급성장한 것이 결정적이다. 오늘날의 현대화한 중국을 놓고 '실패한 역사'라고 말할 역사가가 있을까. 게다가 한국의 급성장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일본의 처지 역시 예전 같지 않다. 빠른 근대화를 밑천삼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새로운 문명의 표준을 제시했다거나 도덕적 국가의 지위에는 이르지 못했다. 여전히 태평양 전쟁을 초래한 역사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때문에 앞서 언급한 원로사학자의 문제의식은 19세기 패러다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9세기의 역사를 재조명할 21세기적인 패러다임이 필요한 때다. 이를 위한 동아시아 역사학자들의 공동연구 결과가 최근 창작과 비평사에서 총 4권으로 출간됐다. '근대의 갈림길' 시리즈다. 이 저작물은 세 나라의 근대 이행기를 알기 쉽게 개론 형식으로 정리하고 그 내용을 비교하는 형식으로 꾸려졌다.

시리즈 참여 교수는 백영서 연세대 교수를 비롯해 김동노 연세대 교수, 함동주 이화여대 교수, 박훈 국민대 교수, 미야지마 히로시 성균관대 교수 등이다. 이 시리즈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학자들은 근대의 전환기에 3국의 대응을 비교 역사학적 시각으로 접근했다.

연구자들은 19세기 부국강병형 국익(國益) 개념에서 벗어나 세계이익(Global interest)과 균형을 이루는 새로운 국익 모델을 제시하고, 대국주의에서 벗어나 소국주의로 방향을 전환해야 역사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이 연구의 총괄 기획자인 창비 편집주간인 백영서 교수(56·연세대 사학과)를 만나 동아시아 근대 이행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들어봤다.

- 최근 동북아시아 정세가 19세기말과 유사하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그 때문에 근대 이행기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역사학자들까지도 역사적 유추를 즐겨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 19세기말 중국 중심의 조공체제가 무너지는 과정과 21세기 냉전질서가 무너지고 신자유주의적인 질서가 대체되는 정세가 닮아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변화한 패러다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선적으로 이해하려 한다면 또다시 역사를 오용할 위험이 있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라기보다는 미래와의 대화가 되어야 한다."

- 과거에 일본의 성공 요인을 베끼려는 시도가 적지 않았다.

"그렇다. 그러나 일본의 성공을 만든 기능적 요인을 나열하며 이를 따라하면 그만이라는 시각은 문제가 있다. 일본의 성공 요인으로 지목되는 빠른 개혁, 근대화와 적극적 개방, 심지어 사무라이 혼이나 메이지 정신 등의 무형적 가치까지 꼽기도 했다. 그 때문에 일본이 승리했고 그것을 우리가 따라 배워야 한다는 것은 역사를 오용하는 대표적 행태다."

- 오늘날 중국을 실패했다고 표현하기는 어렵게 됐다. 그렇다면 일본이 실패한 역사인가?

"불구(不具)의 성공이라고 정리하고 싶다. 되짚어 보면 청일전쟁은 분명 일본에게 이익이었다. 그러나 당시에 성공으로 비쳐졌던 러일전쟁은 일본을 대국주의로 흐르게 만든 결정적인 패착이 아니었나 싶다. 실제 러일전쟁으로 영일동맹이 깨어지고 출구 없는 중일전쟁에 빠지게 되었다. 문제는 여전히 일본이 자기반성을 못하고 있다는 점인데 일본 스스로 대외팽창 정책으로 자멸한다는 점을 인정 안하고 있다."

- 친일(親日)보다는 친중(親中) 하자는 얘기로 들리기도 한다.

"그렇지 않다. 이제까지 '해양국가 동맹론'은 우리나라의 주류적 담론이었다. 일본과 미국 등 해양문명론과 연결돼 성공했다는 해석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검토 결과 우리에게는 반도국가론이 필요하다고 본다. 20세기 초에 최남선 등이 주장했던 대로 대륙과 해양이 교차하는 특징을 아우르는 국가 전략이 나와야 할 때다. 친중 친일의 갈림길이 아니라 양쪽을 아울러야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어떤 발전전략인가?

"대국주의를 지양하고 소국주의 전략을 다시 봐야 할 때라는 얘기다. 우리 안에 숨겨진 대국주의 지향이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끼친다. 독립신문에도 빨리 부강한 나라가 돼서 청나라를 치고 요동반도를 되찾자는 식의 주장이 나오는 것이나, 오늘날 세계 7대 강국, 10대 강국 운운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분명 온건 개화파들에게도 소국주의적 전통이 있었고 대한제국의 중립화 정책으로 이어졌다. 21세기에는 민주주의와 평화주의라는 소국주의, 혹은 우리에 걸맞는 중형국가 전통이 세계이익과 합치하는 진정한 국익개념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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